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내가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사람
내 나이 7살 때...
술 먹고
주사만 부리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간 엄마를 다시 본 건
20년이 훨씬 지난 여름이었다
공장
가까운 곳에 얻어 놓은 자취방에
이틀이 멀다시피 와서
빨래와 반찬들을 만들어 놓고 가는 엄마와 마주치기 싫어
동료와 어울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방황하다
해를 만날 수 없는 달처럼
집으로 오곤 했다
밤하늘에 별들이
바다에 몽땅 빠져버린 날들만 새다
다시 시작된 인연 앞에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해주려는 몸짓들이
내가 버리고 떠나온 것처럼
위선 같아 보였던 나는
인정할 수도 있는 것들 조차
밤보다 더 깊이 외면하고 있었다
“오지 마세요 제발“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에
던져버린 탓이었는지
낮과 밤처럼
오가던 엄마의 흔적들이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고
단 하나의 언어로만 남은 날들이
꼬박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밤
누군가 다급히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열고 나간 내 눈에
낯선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혹 김귀녀씨 아들이세요?..“
“누구시죠?”
그 남자는
자신이 가지고 온 소식을 꺼내놓기가
뭐 했는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다
“ 어머니가 자네 집에서 나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네 중태일세“
기억상실증으로
아무것도 기억 못 한 채 살다
하나하나 세월을 따라
떠올라온 지난날들과 함께
다시 찾아간 집에는
세상 밖으로
떠나간 아버지의 흔적과
세상 속으로
사라져 버린 아들의 소식만을 듣고서
수년간을 찾아 헤매다녔다는
낯선 남자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넘기며 도착한 병실엔
흰 천으로 싸여
영안실로 밀려가는 엄마의 손끝에서
잎을 위해지는 꽃잎처럼 떨어진
사진 하나
유치원 운동회 날
엄마와 찍은 사진에 손때 묻은
흔적들이 번져있는 걸 보며
그제서야 잊고 있었던....
아니
이를 악물고 눈썹 끝에서
버티고 있던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을 용서하며 떨어지는
저 꽃잎이 되어..
하늘나라로 떠나간 엄마가 남기신
트럭에 실려있는 커다란 물통 하나와 세탁기 두 대가
이별 후에도
끝나지 않는 슬픔을 안고 지내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며..“
쉬는 주말엔
혼자 사시는 홀몸노인 분들이 있는
동네들을 찾아다니며
이불과 옷가지들을 빨아주는
봉사를 하고 다니셨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 일을 내가 하겠다고.....
따뜻한 어둠에 잠긴 별이 되어
멀어져간 엄마가
내게 주고 간 트럭 한대로
마음이 갈 수 있는 곳들을 찾아
쉬는 주말마다
5년째 돌아다니고 있던 나와
뜻을 함께해주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파란 하늘가에
어르신들의 이불과 옷가지들을
펼쳐놓으며
밤을 사랑한 달이 되어
엄마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었다
“자네가..
김 여사 아들이구먼“
“자네 어머니 덕분에
우리 노인들은 행복했다오“
“다음 생에
김 여사를 한 번 더 만나고 싶어?”
“다음 생에도 또 신세 지게?”
“이생에서 김 여사 모자에게
신세를 많이 진 것 같아서
다음 생엔 좀 갚아주려고 그려
왜 꼽냐?“
빨래를 넌 자리 밑에
고슬고슬 밥을 지어
오순도순 식사를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은
섬을 재우는 파도처럼
말동무가 되어주던 엄마의 모습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찬으로
함께 드시고 계신 걸 보며
"내가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사람..."
엄마가 들어 있는 하늘을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사랑한단 말을
이제서야 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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