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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할매와 택시기사의 눈물나는 스토리

택시 기사들은
흥미진진하거나
신기한 일들을 많이 겪습니다.

택시들은 "잠들지 않는 도시" 곳곳을 누비며
승객을 이곳 저곳으로 분주하게 실어 나릅니다.

어느 날,
택시기사가 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에게 일어난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콜을 받고
해당 주소로 가서 경적을 울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 경적을 울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이 손님이 그 날 교대 전 마지막 콜이었기에
그는 마음이 급해저 얼른 포기하고
차를 돌릴까하다가 일단 문으로 가서
다시 불러보기로 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시간이 꽤 지나 문이 열렸고
90이상 되어 보이시는 작고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문가에 서 계셨습니다.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계셨고
문이 조금 열려 집 안이 보였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 안에는 사람 산 흔적이 싹 지워진듯
모든 가구는 천으로 덮여있었고 휑한 벽에는
아무 것도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진과 기념품이 넘쳐나는
상자 하나만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기사 양반! 내 여행 가방 좀
차로 옮겨 줄래요? 부탁해요!"

할머니의 요청대로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할머니에게 돌아가 천천히 차 까지 부축해 드렸더니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에요... 모든 승객을 제 어머니처럼 모셔야죠!”

"굉장히 친절하시네요!"

할머니는 택시에 탄 뒤 목적지 주소를 알려주며
시내를 가로 질러가지 말아달라고 하셨습니다.

"음!... 그럼 목적지까지 가는 지름길이 없는데요!
시내를 통과하지 않으면 많이 돌아가게
될 텐데 괜찮으세요?"

할머니는 저만 괜찮다면 급할 게 없으니
돌아가도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지금 요양원에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죽으러 가는 곳이죠!"

할머니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 가셨습니다.

"의사가 말하길 제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재빨리 미터기를 껐었습니다.

"어디 가 보고 싶은 데 없으세요?"

저는 그 후 두 시간 동안 할머니와 함께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분은 젊은 시절 일했던 호텔을 비롯해
고인이 된 남편과 함께 살았던 예전집 등등...
그 동안 인연이 있었던 시내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 동안 할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 처럼
바라보시기도 하고 때로는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눈물을 보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제 피곤하네요! 목적지로 가주세요!"

도착한 요양원은 생각보다 작았고
차를 세우니 두 명의 간호사가 나와서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웠습니다.
나는 트렁크 속에 두었던 여행 가방을
꺼내 들었습니다.

"요금이 얼마죠?"

할머니는 핸드백을 열며 제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무료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아! 생계는 꾸려가야지!"

"승객은 또 있을테니까 걱정마셔요.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고,
그 분 역시 절 꽉 껴안았습니다.

"이 늙은이의 마지막 여행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할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요양원을 나왔습니다.

교대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정처없이
차를 몰고 돌고 돌아다녔습니다.
누구하고도 만나거나 말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손님을 태우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일은 인생을 살며
제가 해 온 것 중에 가장 뜻깊은 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크고 화려한 순간에만 집중합니다.
더 크게, 더 빨리, 더 멀리...

하지만 정작 인생에 의미있는 순간은
조용하고 사소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그런 순간을 맞이하면 어떨까요?
천천히, 또박 또박 진지하게 말입니다...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기 전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셔요.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가치있는 인생에 대해 생각에 잠겨봅니다.

나는 지금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나요?
바쁘다는 이유로 인생의 소중한 의미를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내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소중합니다.

좋은 사람을 찾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좋은 조건을 찾지말고
내가 좋은 조건이 되는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랑을 찾기 전에
좋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 줍시다.

좋은 하루가 되길 바라지 말고
좋은 하루를 만들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말고
나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털어봐! 아프지 않은 사람 있나?
꾹 짜봐!
슬프지 않은 사람 있나?

찾아봐! 힘들지 않은 사람 있나?
건드려 봐!
눈물나지 않은 사람 있나?

물어 봐!
사연없는 사람 있나?
살펴 봐!
고민없는 사람 있나?

가까이 다가가 봐!
삶의 무게가 없는 사람이 있나?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습니다.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세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더라!

살만 하니 떠나는게 인생입니다...


- 산야와 울타리 '주막아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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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쫓겨났던 할머니

어느 큰도시에 독자 아들을 생각해서 미리 모든 재산을 전부다 상속해주고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과 며느리가 할 말이 있다며 말하기를
어머니 저는 어머니랑 마음이
안 맞아서 같이 못 살겠어요
이제 집을 나가주세요
나가서 혼자 사세요

어머니는 그날 마음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버림받고 돈도 없이 집을 쫓겨 나야만 했습니다.
당장 먹고 살곳도 없고 돈도 없고
정처 없이 그저 한목숨 부지하기 위해 무조건 번듯한 동네를 찾아가서 벨을 누르고 파출부로 써달라고 슬픔을 참으며 할머니는 간절히 부탁을 하면서 돌아 다녀야만 했습니다.

할머니는 심신이 모두 지친 가운데
계속 퇴짜를 맞다가 어느 집인가에서 할머니를 보고 그집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희집에 아버님이 병환으로 누워 계시는데 혹시 외람되지만  병 간호 좀 해주시고 그냥 말벗도 좀되어 주시겠어요
아들과 며느리에게 쫓겨나 거처와 돈이 없었던 할머니는
'네,, 그럼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그날부터 그 집에 들어가
사랑과 정성을 다해 그집 환자 할아버지를 돌보고 친구처럼 말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어느덧 그렇게 1년이 지날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집 아들 부부는 어느날 이렇게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어려운 부탁이 있는데요.
저희 어머니가 되어 주세요!
아버님도 할머니를 너무 좋아하시고
저희 부부도 우리 어머니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안 계시니 어머니로
꼭 모시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저의 어머니로 모시는 것을 허락 해 주세요
그렇게 그 할머니는 그날부터 뜻밖의 간청을 받고
마치 재벌 동네 같은 지역에서  
아들 며느리 또래의 착하고 마음씨 좋은 그집 부부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 어느날 할아버지와 아들부부와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밖을 나가는데 정말 우연히 그 할머니의 독자였던 아들과 며느리를 만났습니다

아들이 오랜만에 어머니를 보니
놀랍게도 훤해진 어머니
예전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매우 우아한 옷과 장신구를 한 어머니,를 보면 누가봐도 한눈에 재벌집 마나님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고는 당시 사업에 어려움을 겪게 된
그 아들은 다시보게 된 어머니가 돈좀 있어보이니까
아들과 며느리가 말하기를

'어머니, 다시 우리 집에 들어오셔서 사세요 저희가 잘 모실게요 하니

'할머니 왈!
"누구신지요?"
나는 당신과 같은 아들과 며느리를 둔 적이 없습니다.
내 아들과 며느리는 저기 있고
내 남편도 여기 계십니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배반의 늪을 지나 신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글은 실제 실화 이야기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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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찡한이야기🦃

소록도에서 거주하고 있는 K신부 앞에 일흔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신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본 소리는 아닌 듯 사뭇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신부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 저에게는
모두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전,
그 아이가 열 한 살 때였지요"

"병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산 속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두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 발 두 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 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밑까지 차올라 한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 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해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 떠미는
아들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 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소록도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오남 이녀의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 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올라와 함께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 주면 누워 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가 생각이 났지만,
얼마 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들은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 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셋째, 넷째...

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다
내다버린 아이,

내 손으로 죽이려고까지 했으나,
끝내는 문둥이 마을에 내팽개치고,
40년을 잊고 살아왔던 아이,

다른 일곱 명의 자식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공부까지 시켜 놓았지만...

내다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걸렸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를 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 된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일곱 개의 화초보다,

쓸모없다고 내다 버린
한 포기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신부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이곳에서 믿음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애는 내가 여기와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 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일곱명의 아이들에게선      
한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눈빛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 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신부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얘기가 있죠
화초로 키운 내새끼는
절대 응답 안하고
잡초로키운 새끼가
후자에 응답 한답니다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날 되시길~~^♡^

- 아침에 담아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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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일상다반사 2023. 3. 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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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오래 전 영국 런던의 템스 강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귀퉁이에 한 거지노인이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을 연주를 하며 구걸하고 있었는데
낡아 빠진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는 신통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습니다.
거지노인이 벗어놓은 모자에 동전을 넣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웬 낯선 외국인 한 사람이 그 곁을 지나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거지노인이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거지노인은 다 떨어진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신발도 떨어져서 너덜너덜했습니다.
머리도 제대로 감지 못해서 덥수룩한 상태였습니다.
보기에도 처량해 보였습니다.
그 외국인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측은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죄송하지만 지금 제 수중에 준비된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아는데, 제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잠시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거지노인은 잠시 쉬기도 할겸 해서 그 낯선 외국인에게 낡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습니다.
외국인은 그것을 손에 쥐고서 천천히 활을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낡아 빠진 바이올린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걸음을 멈추고는 외국인이 연주하는 음악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한 곡이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두 곡이 끝난 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거지노인은 자기가 벗어놓은 모자를 들고서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모두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노인의 모자에 넣었습니다.
순식간에 돈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것도 한 푼 두 푼 던져주는 동전이 아니었습니다.
돈의 단위가 높았습니다.
모두가 지폐를 꺼내서 모자에 넣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 경찰관도 놀라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경찰관마저도 다 낡아 빠진 바이올린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되어 그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찰관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거지노인의 모자에 넣었습니다.
이제 연주가 끝났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파가니니다, 그 유명한 파가니니”
이탈리아의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바이올린의 귀재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바이올린의 마술사’라고도 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린의 명연주가입니다.
그가 런던에 연주차 왔다가 호텔에 머물러 있으면서 잠시 시간을 내어 템스 강변을 산책하기 위해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쌍한 거지노인이 바이올린을 힘겹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생각되어, 그를 위해 대신 몇 곡을 연주해 주었던 것입니다.
바이올린의 명연주자 파가니니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보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다 낡아빠진 바이올린이었지만, 그것이 누구의 손에 잡혀 연주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거지노인이 그것을 연주할 때는 형편없는 소리였지만, 파가니니의 손에 그것이 들려져서 연주되었을 때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던 것입니다.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하고, 선무당이 장구 탓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본인의 능력부족을 감추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댄다는 의미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핑계를 대더라도 주위에서는 다 알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 책상에 앉아 책으로 가리고 허튼 짓하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선생님은 앞에서 보면 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본인의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그 부족을 메워 더 발전적으로 나갈 수 있는 초석이 됩니다.
연장을 탓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멋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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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게 잔돈을 탈탈 털어준 여성의 감동실화

감동실화,
거리의 노숙자에게 잔
돈을 탈탈 털어준 여성.

"집에 온 뒤,
지갑을 확인한 그녀는 뒷목을 잡았다."

미국 캔자스시티에 사는
노숙자 빌리(Billy Ray Harris)는
2013년을 잊지 못합니다.

비록 누추한 차림의 노숙자였지만,
누구보다 선한 마음을 가진 빌리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해였으니까요.

그해 어느 날, 사라(Sarah Darling)라는 한 여성은
거리에서 구걸하던 노숙자 빌리를 보고
그에게 적선했습니다.

동전 지갑을 열어 그 안에 있던 동전을
그의 앞에 놓인 컵 안에 모두 쏟아주었죠.

몇 시간 뒤,
집에 돌아온 사라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습니다.

동전지갑에 넣어둔 약혼반지까지
빌리에게 모두 털어준 것입니다.



당황한 그녀는 급히 차를 몰고
빌리를 만났던 거리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죠.

그사이 빌리는
보석 가게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컵에 들어온 반지를 보고는
진짜인지 궁금한 마음에서였죠.

보석 가게 주인의 말을 들은
그는 깜짝 놀랍니다.

그가 받은 반지가
진짜 다이아몬드 반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그 자리에서
4,000달러(약 480만 원)을 줄 테니
반지를 팔라고 말했습니다.

빌리는 순간 갈등했습니다.

그 돈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한 거리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던 그는 결국 반지를 돌려받고
가게를 떠났습니다.

다음 날,
사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빌리가 있던 자리를 다시 찾았습니다.



빌리는 그곳에 있었죠.
사라는 초조하게 그에게 다가가
자신을 기억하는지 물었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빌리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사라에게 주었습니다.

사라와 그의 남자 친구는 정직한 빌리에게 크게 감동했고,
곧 빌리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마다하고
반지를 돌려준 한 노숙자의 사연은
금세 화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죠.

모금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무려 2억 3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모였고,
빌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의 도움으로,
빌리는 16년 동안 연락이 끊긴
형제들과도 재회했습니다.

빌리가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형제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얼싸안았습니다.

아름다운 선행이 불러온 훈훈한 결과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비록 거리를 전전하던 노숙자였지만,
빌리는 진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매우 멋진 분이네요.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그의 힘찬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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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紳士道(gentlemanship)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닥쳐 침몰하는 과정은 영화로 재연됐습니다.

하지만 영화만으로 실제 상황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생존자인 부선장은 오랜 세월 침묵 끝에 드디어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래히틀러'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아래는 '찰스·래히틀러'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입니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래히틀러'씨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있던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세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 거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애스터 IV(당시 세계 최고 부자)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아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구겐하임'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이오.”

미국 메이시(Macy’s)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씨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씨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아내 '로잘리'씨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씨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씨의 팔을 잡고 천천히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프랑스 상인 '와트열'씨는 두 아이를 보트에 탄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배 위에 남아 아이들과 작별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렇게 구조되었고 세계 각지의 신문사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연달아 사진을 실어주어 어머니와는 재회할 수 있었지만, 배에 남겨진 아버지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씨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재가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아스테드', 저명 신문가 '헴스테드', 육군 소령 '바트', 저명 엔지니어 '루오부어' 등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았지만, 이들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 외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번 전산사 '존·필립스'씨는 여전히 전산실에 앉아 마지막 순간까지 ‘SOS’를 입력하며 자신의 보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우리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씨는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을 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자리에서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은 희생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Unsinkable’의 저자 '다니엘 알란 버틀러'는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삶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치고 혼자 남겨져 돈과 유산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 혹은 삶의 어떤 고난과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분들의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무엇이 이 분들로 하여금 목숨을 던지는 고귀한 결단을  내리게 하였을까요?

사랑, 희생, 배려, 품격, 명예? 아니면, 인간적인 성품......

매일 만사에 허덕이는 우리 삶,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까요, 지금 내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내인생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해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내가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서 놓아서는 아니될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며, 잊었던 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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