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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발

일상다반사 2022. 10. 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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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발

여러번 읽어도 마음이 뭉클하네요.

어느 일류대 졸업생이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

사장이 면접 자리에서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을
목욕시켜드리거나
닦아드린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의 등을
긁어드린 적은 있나요 .?"

"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등을 긁어드리면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셨죠."

청년은  
혹시 입사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

그러나
잠시 후 사장은 청년의
마음을 읽은 듯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했다.

정해진 면접시간이 끝나고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세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닦아드린 적이 없다고 했죠?
내일 여기 오기 전에 꼭 한 번 닦아드렸으면 좋겠네요.

할 수 있겠어요?"

청년은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반드시 취업을 해야하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품을 팔아
그의 학비를 댔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는 명문대학에 합격했다.

학비가 어마어마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제  
그가 돈을 벌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차례였다.

청년이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일터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청년은
곰곰이 생각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시니까
틀림없이 발이 가장 더러울 거야.
그러니
발을 닦아 드리는 게
좋을 거야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이 발을 씻겨 드리겠다고
하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발을 닦아준다는 거니?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닦으마!"

어머니는
한사코 발을 내밀지 않았다.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닦아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렸다.

"어머니
오늘 입사 면접을 봤는데요.
사장님이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다시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꼭 발을 닦아드려야 해요."

그러자
어머니의 태도가 금세 바뀌었다.
두말 없이 문턱에 걸터앉아
세숫대야에 발을 담갔다.

청년은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어머니의 발등을 잡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까이서 살펴보는
어머니의 발이었다.
자신의 하얀 발과 다르게 느껴졌다.

앙상한 발등이 나무껍질처럼 보였다.

"어머니!
그동안
저를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이제
제가 은혜를 갚을게요."

"아니다
고생은 무슨 ..
""오늘 면접을 본 회사가
유명한  곳이거든요.
제가 취직이 되면
더 이상
고된 일은 하지 마시고
집에서 편히 쉬세요."

손에
발바닥이 닿았다.
그 순간
청년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

아들은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의 발바닥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이
발바닥에 닿았는지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발바닥의
굳은살 때문에
아무런 감각도 없었던 것이다.

청년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고개를 더 숙였다.
그리고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새어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 또 삼켰다.

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한쪽 어깨에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청년은
어머니의 발을 끌어안고
목을 놓아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다음날 청년은
다시 만난
회사 사장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장님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 주셨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약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어머니의
발을 살펴보거나
만질 생각을
평생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에게는  
한 분 뿐인 어머니 밖에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이제
정말 어머니를 잘 모실 겁니다."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지금
  
바로 인사부로 가서 입사 수속을 밟도록 하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이름은
우리들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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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여인의 러브스토리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쯤 가면 돌산도란 섬이 나온다.

이 섬에 있는 금오산 중턱 바위절벽에 신라시대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수도한 향일암이 있다.

울창한 낙락장송의 솔바람 소리,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 남해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말 그대로 기막힌 절경이다.

어느 날, 키가 훤칠한 미남 스님 한분이 순천 송광사에서 향일암으로 왔다.

나이 27살 법명은 지현, 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팔염주에 사바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상념의 경지를 거닐고 있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암에는 이로부터 여신도들이 몰려
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인물 좋고,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곧 바로 향일암의 인기
스님이 된 것이다.

향일암에서 1km 떨어진 해변의 율촌
마을에 양장 차림의 예쁜 처녀가 찾아들었다.

폐결핵으로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을 하려고
광주에서 이모가 사는 율촌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이 요정처럼 예쁜 미인이었다.

동백과 산죽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이
온섬을 뒤덮고,
바위틈에 도사린 석란의 향기는 십리
안팎을 유혹하던 때였다.

그녀의 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
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 금오산으로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그 때 그녀의 눈에
띈 남성이 바로 지현스님!

그녀는 부처님 앞에 정좌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근엄한 모습을
취한 듯 정신없이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오산 중턱의 향일암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
졌고, 지현스님의 얼굴을 못 보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장승일뿐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으며, 세월이 흘러서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서 이번엔 폐결핵이 아닌 상사병에 몸부림 치다가 처녀는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는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스님에게 달려가 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하고, “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할 수 있도록 녹두물이나 갈아 먹이시오.”라고 했다.

이모는 되돌아와
바로 녹두를 갈아 먹였으며, 의사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어느날 새벽 4시,
지현스님은 화엄경을 독경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흔들바위에 맨발로 서서 남해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바로
그 찰나였다.

혼비 백산한 지현스님은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 내리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으로"스님과 함께 항상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더듬거릴 겨를이 없었으며,
“알겠으니 제발 그 곳에서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그녀는 바위
위에서 실신하고 말았으며,
스님은 곧 바로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님의 품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감에
지현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순간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 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었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며,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여름날!

대구의 절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스님은 어떤 모녀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 하면서 어미는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껄껄 크게 웃으며,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
하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가슴
가득 안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 왔으며,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남 2녀를 두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나, 기자에게
사진 찍기를 끝까지 거부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인 ‘흔들
바위’는
오늘도 금오산
향일암 주변에서 의연하다.

“사랑했음으로 행복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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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저녁 식사]

한창 길이 막히는 바쁜 퇴근 시간 80대 할아버지 한 분이 택시 안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기사 양반. 좀 더 빨리 갈 수 없나. 급해서 택시를 탔는데 전철보다 느린 것 같아. 내가 6시까지는 꼭 도착해야 해."

재촉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급해 보여서 운전기사는 최대한 빠른 지름길로 택시를 몰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6시 전에는 도착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그렇게 급하신 건가요?"

"6시까지 할멈이 있는 노인요양병원에 도착해야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어. 늦으면 간호사들이 할멈을 먼저 먹이고 밥상을 치워버려서."

"늦게 가시면 할머니가 화를 내시나요?"

"우리 할멈은 치매라서 내 얼굴도 잘 못 알아봐. 벌써 5년이나 되어버렸어..."

"그러면 일찍 가든 늦게 가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나요?"

의아해하는 택시기사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택시기사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할멈은 내가 남편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난 아직도 할멈이 내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거든!"

-‘따뜻한 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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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

일상다반사 2022. 9. 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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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닥쳐 침몰하는 과정은 영화로 재연됐습니다.

하지만 영화만으로 실제 상황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생존자인 부선장은 오랜 세월 침묵 끝에 드디어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래히틀러'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아래는 '찰스·래히틀러'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입니다.

선장은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있기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래히틀러'씨는 "살아 있는 동안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있던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세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 거에요.”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애스터 IV(당시 세계 최고 부자)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랑해요 여보!"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최소한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타아타닉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구겐하임'씨가 아내에게 남긴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답게 죽을 것이오.”

미국 메이시(Macy’s)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씨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씨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아내 '로잘리'씨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씨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씨의 팔을 잡고 천천히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 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프랑스 상인 '와트열'씨는 두 아이를 보트에 탄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배 위에 남아 아이들과 작별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렇게 구조되었고 세계 각지의 신문사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연달아 사진을 실어주어 어머니와는 재회할 수 있었지만, 배에 남겨진 아버지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씨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생 재가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아스테드', 저명 신문가 '헴스테드', 육군 소령 '바트', 저명 엔지니어 '루오부어' 등 사회의 저명인사가 많았지만, 이들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히틀러' 외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번 연산사 '존·필립스'씨는 여전히 전산실에 앉아 마지막 순간까지 ‘SOS’를 입력하며 자신의 보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날, 우리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씨는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을 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를 기리는 자리에서 타이타닉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는 희생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Unsinkable’의 저자 '다니엘 알란 버틀러'는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삶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치고 혼자 남겨져 돈과 유산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 혹은 삶의 어떤 고난과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분들의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무엇이 이 분들로 하여금 목숨을 던지는 고귀한 결단을  내리게 하였을까요?

사랑, 희생, 배려, 품격, 명예? 아니면, 인간적인 성품......

매일 만사에 허덕이는 우리 삶,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까요, 지금 내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내인생의 타이타닉호가 침몰해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요?

내가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서 놓아서는 아니될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며, 잊었던 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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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비결

일상다반사 2022. 9. 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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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 공동묘지 관리인이 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이 일주일에 5달러씩 돈을 보내 왔습니다. 그리고 편지도 같이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몸이 아파서 아들 묘에 갈 수가 없습니다. 아들 묘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신선한 꽃을 갈아 꽂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 주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수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그 공동묘지를 한 부인이 방문하였습니다. 차가 도착하자 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부인을 운전기사가 부축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쓰러질 듯 흔들렸습니다. 곧 죽을 것 같은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슴에는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관리인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1주일에 한 번씩 편지와 5불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제 이름은 아담스입니다. 제가 오늘 직접 오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담당 의사가 내 생명이 몇 주 못 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세상 떠나기 전에 내 사랑하는 아들의 무덤에 내가 직접 꽃다발을 갖다 놓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관리인이 말했습니다.
"부인. 그렇군요. 그런데 나는 부인에게 용서받을 것이 있습니다. 저는 매 주 부인이 보내준 돈을 가지고 꽃을 사서 무덤 앞에 놓을 때 마다 부인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해 왔습니다."

부인은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관리인이 말했습니다.
  "꽃은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다 시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그 무덤에 꽃을 꽂아 놓아도 누구 하나 향기를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냄새를 맡습니까? 죽은 사람이 좋아합니까? 그것은 부인의 생각일 뿐이고, 죽은 사람은 보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못합니다. 저희 집 옆에 공립병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가족이 없이 혼자 입원하여 있는 환자들에게 꽃을 갖다 주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꽃을 주면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환하게 웃었습니다. 냄새도 맡고 기뻐하였습니다.

부인께서도 매 주마다 이제는 공동묘지에 꽃을 가져오지 말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한번 갖다 줘보십시오. 죽은 사람에게 주어서 무엇합니까? 산 사람에게 주어야지요."
 
이 말을 듣고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그 부인이 직접 운전을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동묘지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관리인님! 제가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갖다 주었습니다. 아들에게 일주일에 5불씩 쓰던 돈을 아픈 이들에게 썼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더군요. 좋아하는 그들의 얼굴 표정을 바라볼 때 내 마음도 기뻤습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성 질환도 떠나고 몸이 이렇게 건강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 눈높이로 살지 않고 소외된 사람 속에 들어가 그들 눈높이로 살았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삶의 눈높이를 낮추었더니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자아연민에 빠지면 나 자신이 죽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되어주면 축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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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어머니의 유언장

어떤 말이 그리 눈물 나게 했을까.
단 열네 줄로 쓴 어느 어머니의 유서를 읽으면서 눈자위를 맴도는 눈물을 삭히기가 어렵다.
자려고 누워서도 유서의 말이 떠올라 눈시울이 젖는다.
그다지 가져보지 못한 눈물인 것 같다.
그 유서의 전문은 이러했다.
(전체가 열네줄이라 했는데 여기 올리면서 몇 줄이 늘어났음을 말씀드립니다.)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지아비 잃고 세상이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 줌도 자네들이었네.
병들어 하느님이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 줘서 참말로 고맙네!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

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노릇 버거웠지?
큰 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둘째야, 일찍 어미 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
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2017년 12월 엄마가

사십대 초반에 공무원이던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35년간을 홀로 오직 일녀삼남 자식들만 바라며 살아온 어머니의 유서다.

78세에 난소암을 얻어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이 유언이 공개된 장례식장은 흥건한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무엇이 그토록 눈물겹게 했을까?
우선 자식들을 두고 ‘자네’라고 부르는 2인칭 대명사가 눈물겹다.
친구나 아랫사람을 대우하여 이르는 ‘자네’라는 말 속에는 자식을 끔찍하게 위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극진한 마음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머니로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요즈음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떠올리기조차 꺼려지는 일이지만,
부모의 학대로 어린 자식이 무도한 지경에까지 이르는 일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고 있는가.
자식을 귀하게 대우하는 어머니 임에야 자식인들 어찌 바른 성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유언 속을 들여다보면 자식들의 어머니를 위한 지성도
예사롭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어머니는 자식들의 치성이 고맙기도 했겠지만,
그 ‘고마움’은 그것에만 있지 않았다.
어미라고 불러주는 것이 고맙고,
젖 배불리 먹고 어미를 바라보는 그 눈길이 행복을 주어 고맙고,
지아비 잃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되어주어 고맙고, 세상 떠날 때 곱게 갈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아무 바랄 것 없이 거저 내 자식인 것만으로도,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있는 무위의 사랑이 눈물 샘을 울컥 밀어 올린다.

노자(老子)가 말한
‘낳아주되 제 것으로 갖지 않고,
위해주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라게 해주되 간섭하지 않는
生而不有
(생이불유),
爲而不恃
(위이부시),
長而不宰
(장이부재)’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자는 이를 일러 ‘현덕(玄德)’이라 했다.
‘인간이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길 없는 묘한 도덕’ 이라는 말이다.

이 어머니는, 당신이 있어 자식이 잘 산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잘 살았다 하고,
당신이 자식을 열심히 살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있어 당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당신 삶의 모든 공을 자식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런 마음을 두고 노자는
'功成而不居 (공성이불거)
공을 이루고도 연연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이는 곧 ‘자연의 일'이라 했다.
자연이 만물을 대하는 이치와 같다는 말이다.
이 어머니의 사랑이 이와 같을진대 이보다 더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이 있을까? 그 순수와 숭고가 다시 눈물샘을 솟구치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어머니는 일녀삼남을 일일이 다 부르면서
제 노릇하며 사느라고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느냐고 오히려 위로해 주며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면서 자식들을 토닥인다.

이에 이르러 방울 굵은 눈물을 지우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그 자식들은 어떠하였을까?

이 유언을 들으면서 자식들이 흐느낀 울음이며 세상 사람들이 지은 눈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물론 말할 수 없이 지극한 자애(慈愛)에 대한 깊은 감동의 눈물일 것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애정이며, 자식의 부모에 대한 경애심이 점점 흐려지고 거칠어져 가는 세태가 돌아보일수록
이 유언에 어린 감동이 더할 나위 없는 큰 울림으로 새겨져온다.

어찌 감동으로만 끝날 수 있는 일인가.
여기서 누구든 자신의 삶이 돌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의 종언을 앞두게 되었을 때, 무슨 말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나는 이 어머니만한 지성으로 살아오지 못한 것 같다.

자식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를 생각하면 민연해질 때가 있다.
하물며 어찌 이런 말을 남길 수가 있을까. 내가 못한 것을 너희들은 잘 해달라는 구차한 말조차도 남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일을 생각하다보면 이 어머니의 유서가 다시 눈물겹다.

내 살아온 자취가 더욱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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