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어느 어머니의 편지 '세상 별거없다 속끓이지말고 살아라'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썻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 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 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 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 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물었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슴이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천박하고 경솔하다)
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 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 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 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쎈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끊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에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사는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거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없고
귀천이 따로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보내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운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수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닯아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길렀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






728x90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뚝딱정보

일반정보 생활정보 모든 정보사항들을 한눈에 공유 하는 블로그입니다.

,
반응형



[어떤 노인의 요양병원 일기]

열심히 살 때는 세월이
총알같다 하고 쏜 화살 같다 하건만
할 일 없고 쇠하니
세월 가지 않는다 한탄이 시더이다

정신 맑으면 무엇하리요
자식 많은들 무엇 하리요
보고픔만 더 하더이다

차라리 정신 놓아 버린 저 할머니처럼
세월이 가는지 자식이 왔다 가는지
애지중지 하던 자식을 보아도 몰라보시고
그리움도 사랑도 다 기억에서 지워 버렸으니
천진난만하게 주는 하루 세끼 간식만이
유일한 낙이더이다

자식 십 여 남매 있음 무엇하리요
이 한 몸 거할 곳 없더이다
아들 딸 자식들 유명 인사 무엇하리요
이 한 몸 갈 곳 없어
여기까지 흘러 흘러 왔더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최고학벌 자랑하며
고생도 보람으로 알고
자식 뒷바라지 했든 들
무엇 하리요 작디작은 이한 몸,
자식 아닌 사람 손에 매인 것을

인생 종착역인 이곳 까지가
멀고도 험하였으리
종착역에 벗은 많으나
마음 나눌 곳 없어 외롭더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속에
맑은 정신은 외롭기만 하더이다

치매로 정신을 망각함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몸은 쇠하고 정신 맑으면
무엇 하리요 괴로움만 더 하더이다

가는 마당에 야속함도 사랑도
그리움도 추억도
정신에서 모두 내려놓으니
차라리 마음이 홀 가분..
모진 비바람도 다 지나간..
조용히 흐르는 저 호수같은 마음으로..


과거엔 부모들이 자식에게 전 인생을 투자하고
노후를 보장 받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젠 정부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아니라면
자신이 스스로의 노후를 책임져야할 시대입니다

아직도 연금타고 퇴직금타서
울며불며 매달리는 자식에게
결혼비용 사업자금 취업자금
다 털어주고 빈 털털이가 된 부모들이
길거리에 내 몰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서로 비참한 꼴이 되지요
한 푼 없이 늙고 초라한 부모가 자식들에게
더 이상 부모가 아닌 것이 오늘의 세태입니다

자식에겐 교육까지만 책임져주고
언제까지가 될지 모를
자신의 제3의 인생
노후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이 현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노인들의 이야기 입니다.

- 어떤 노인의 요양병원 일기 中






728x90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자 웃음 이야기  (0) 2022.05.26
[유통기한 지난 음식]  (0) 2022.05.26
♣︎ 인생의 의미 ♣︎  (0) 2022.05.26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0) 2022.05.26
[불륜과 정사의 정의는]  (0) 2022.05.25
블로그 이미지

뚝딱정보

일반정보 생활정보 모든 정보사항들을 한눈에 공유 하는 블로그입니다.

,
반응형

원수가 된 형제 이야기

20세 된 큰 아들 밑으로
세 여동생과
아기인 막내아들을 두고
부모가 죽은 가정의
이야기다

큰 아들은 막냇동생을
젖동냥 해가면서 키웠고
대학까지 가르쳤다

그런데
너무 귀엽게 기른 탓으로
응석받이가 되었다

장가까지 보내주었지만
나중에는 형에게
사업자금으로
거금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형은
단연코 거절하였다

나도 빈손으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해왔으니
너도 나처럼
혼자 일어나보라고
꾸짖었다

막내는 행패를 부리면서
형을 괴롭혔다

너무 행패가 심하다보니
경찰에 신고해서
감방까지
갔다 오게 되었다

이 막내는
자기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형을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 뒤 20년이 지나면서
막내도 고생 끝에
드디어 어느 정도
성공을 하게 되었다

자기를 감옥에까지
가게 한 형에게
복수하고 싶은 독한 맘으로
일을 해낸 것이다

그 후 형이
암으로 죽게 되었을 때
한번 만나자고
전갈이 오자
이 막내는
형을 찾아가
침이라도 뱉어주면서
성공한 자기를
당당히 보여주려고
20년 만에
형의 집을 찾았다

거의 죽게 된 형이
그 동생의 손을 붙잡고
네가 성공하였으니
난 죽어도 이제는
한이 없다고 말하자
동생은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하는 형을
비웃는 표정으로 대하였다

형은 서랍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놓으면서
20년 전에
네가 요구했던
돈을 그대로 두었다

그때 내가 너에게
이 돈을 주었다면
넌 지금같이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이제 네가
스스로 성공하였으니
이것을 가져가라고
말하였다

그 통장을
건네받는 순간
동생은
주저앉아서
황소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20년간
곰삭히고 참아 온
형의 사랑이
다이너마이트처럼
동생을 감동시켰다

형제가
원수 된다고 하면
믿지도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형제가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도
이삭과 이스마엘이
형제지만
원수가 되어
지금까지도
풀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기독교의
항구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입니다

이렇틋 형제가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나
원수까지도 가는
극단적인 경우는
어떤 때 일까요

형제간은
불가에서는
부부의 연은
팔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하고
형제간의 연은
더 짙은 인연인
구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답니다


728x90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아내의 한탄가].  (0) 2022.04.30
🌺 4월을 보내며  (0) 2022.04.30
○ 할머니의 순결  (0) 2022.04.30
○ 신혼시절을 그리워하며  (0) 2022.04.29
[노부부의 '가훈']  (0) 2022.04.29
블로그 이미지

뚝딱정보

일반정보 생활정보 모든 정보사항들을 한눈에 공유 하는 블로그입니다.

,
반응형



💖 애틋한 사랑이야기 (감동실화!!) 💖

한 청년이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전방에 근무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하 사병의 실수로
수류탄 사고를 당해
한 쪽 팔을 잃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 중
대학에 다닐 때 사귀던
여자 친구가 병원으로
병문안을 온데서
그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고
기회를 엿보다가
여자 친구에게 “팔이 없는 나를
지금도 좋아하느냐?” 고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물었다.

반신반의 하면서 묻는 질문에
여자 친구는
“나는 너의 팔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팔이 있고 없고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얻었을 때
정말로 천지를
다시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자 친구는
그 때부터 병원 근방에
방을 얻어놓고
병원엘 드나들면서
간호에 간호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한 팔이 없는
사람의 팔이 되어야 하는
딸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의 딸에게 그 남자를
포기하고 새 길을 찾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딸은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한 팔을 잃으신다면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 말에 아버지도
딸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남자와 사귀는 것을
허락을 하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제대하여
한 팔이 없는 것만큼
더 큰 노력을 하여
린스와 샴푸를 합친
효과를 내는 하나로를 개발했고

20세부터 80 세까지
사용할 수 있는
2080 치약을 개발하고,
영상통화를 가능하게 한
앱을 개발하는 등의
업적을 세워 통신사의
부사장이 되었다.

그가 바로 조서환
前 ktf부사장,
前 애경산업 이사
현재 세라젬헬스앤뷰티 대표
조서환씨의 이야기이다.



아래 내용은
그의 수기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어찌나 공부를 잘하던지
초등학교 때 그 사람
성적을 앞선 적이 없다.
어린 마음에 ‘저 애와
결혼하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 직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는
연애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고1 때부터
펜팔 친구로 지낸 우리는
편지를 엄청나게 주고 받으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육군 소위로
임관한 지 얼마 안돼
오른손을 잃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입원해 있는데
그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렇지만 머리와 팔에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을 보이려니
덜컥 겁이 났다.

한 손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만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머릿속에 세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첫째, 나를 본 순간 놀라
도망칠 것이다.
둘째,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엉엉 울 것이다.
셋째, 기가 막혀 멍하니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내 가슴이 미어질 것만은 확실했다.

그녀가 병실로 찾아왔다
날 본 뒤
아무 말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가슴이 미어졌다.
세 번째 시나리오가 맞았다.
병실 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이야기하라며 자리를 피했다.

자존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
만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나는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날 사랑하느냐고 묻고 싶다가도,
다른 사람에게 보내줘야 하는데
누가 나만큼 사랑해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없이 바라만 보기를
30분째. 용기를 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도 나 사랑해?”
그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지금도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천사 같았다.
세상을 다 얻어도 이보다 기쁠까.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만
정말 그때 느꼈던 행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얼굴 봤으면 이걸로 끝내자”
는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
그러자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진 당신에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부턴
당신 곁에 내가 있어야 해요.”

이 말을 듣자마자
어떻게든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큰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그때부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불굴의 거인’이 깨어났다.

모태신앙인 아내는
날 위해 매일 새벽 기도를 했고
나는 링거를 꽂은
왼손으로 글씨 연습을 했다.
항상 아내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며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이후 내 인생의 목표가 된
아내는 지금까지 매일
소중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사업상 힘들 때도
꼭 아내와 상의한다.
‘백발백중’ 명답을 말해
하나님 음성처럼 듣고 산다.

=======================

가슴 뭉클한 거짓말 같은
실화이며 지고지순의 고결스런
인간 승리의 한편 드라마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데...

조서환씨는 위 둘을 아우르는
즉 자기를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무한대의 초인적 에너지를
발산함이 아니였을까!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세태에 비록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선의지와 때묻지 않은 내면의
순수의 불씨만은 꺼지지 않으리라
확신해 본다.

- 출처 : 산야와 울타리 (편집/ 무궁화님) 






728x90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뚝딱정보

일반정보 생활정보 모든 정보사항들을 한눈에 공유 하는 블로그입니다.

,
반응형


♡ 산불 뒤, 울린 워낭소리 ...!♡

노부부가 풀어준
소 20마리, 다 돌아왔다.

“하룻밤 사이 집도 우사도 마카(모두) 새까맣게 탔지요. 지금 살아있는 게 용하고 …”

지난 5일 밤 12시 30분쯤 울진읍 정림 2리 야산 인근에 사는 남계순(72)씨는 휴대전화 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울진읍사무소 한 공무원이 “산불이 집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며 “빨리 대피하라”고 다급히 말했다.

남씨는 먼저 부인 송병자(71)씨를 황급히 깨웠다. 당시 이들 부부는 화마가 집과 우사를 덮칠 기세라 귀중품도 챙기지 못한 채 옷가지만 걸치고 나섰다. 삽작(대문의 경상도 사투리) 밖으로 나가려는데 우사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집과 우사가 산불에 휘감겨 불이 붙기 시작할 찰라, 남씨 부부는
소 20마리를 풀어줬다.

부인 송씨는 “나만 살자고 자식처럼 키운 소를 그냥 두고 갈순 없었다”며 “끈을 풀고 우사 문도 활짝 연 뒤 ‘야들아, 여기 있으면 죽는다. 빨리 나가거라’고 외쳤더니 소들도 눈치 챘는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소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화마를 피해 울진군이 마련한 대피소에 도착한 이들 부부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씨 부부는
“당시 공무원이 잠을 깨우지 않았으면 큰 화를 당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날이 밝자 남씨 부부는 자신의 집을 찾았다. 40여평 되는 2층 집은 폭격을 맞은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마당에 세워둔 트랙터도 불에 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 졸지에 집을 잃은 남씨 부부의 근심은 칠흑같은 한밤중에 풀어준 소들의 행방.
이들 부부의 시선은 우사 쪽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사료통 등 타다 남은 우사 터에는 소들이 돌아와 있었다.
일부 소들은 그을려 있었다. “하나, 둘, 셋 …” 어미소 14마리에 송아지 6마리.
남씨 부부는 세고 또 세어봐도 누렁이들이 모두 살아 돌아온 사실을 확인했다.

부인 송씨는
“집도 우사도 모두 타 앞으로 살길도 막막하지만, 그래도 제집이라고 모두 살아 돌아온 소들이 기특했고 뛸 듯이 기뻤다”며

“이제 밤에는 대피소에서, 낮에는 소들에게 수시로 사료와 물을 공급하는 게 일과가 됐다”고 했다.

남편 남씨는 “소들도 화마에 크게 놀랐는지, 평소와 달리 사람을 보면 빤히 주시하거나 걷는 방향으로 따라 다닌다”고 말했다.

~ 카톡에서
받은 글 ~

728x90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희소식  (0) 2022.03.20
 [진정한 행복이란]  (0) 2022.03.20
✨ 삶의 잔잔한 행복  (0) 2022.03.20
나이를 먹을수록 깊게 깨닫는것  (0) 2022.03.19
말년, 재혼  (0) 2022.03.19
블로그 이미지

뚝딱정보

일반정보 생활정보 모든 정보사항들을 한눈에 공유 하는 블로그입니다.

,
반응형



★아내와 나 사이★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이생진 -






728x90
반응형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10계명  (0) 2022.02.26
[인생.. 사는게 다 그렇지]  (0) 2022.02.26
🌷 봄이 오는 소리  (0) 2022.02.26
○ 과부와 땡중  (0) 2022.02.26
부부ㆍ 드라이브  (0) 2022.02.26
블로그 이미지

뚝딱정보

일반정보 생활정보 모든 정보사항들을 한눈에 공유 하는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