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

일상다반사 2021. 3. 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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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부모님이 또 부부싸움을 한다.

발단이야 어찌됐던 한밤중,
아버지는 장롱에서 가끔 대소사가 있을 때 차려 입던 양복을 꺼내 입는다.

내 저 답답한 할망구랑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죄없는 방문만 쾅 걷어차고 나간다.

나는 아버지에 매달려 나가시더라도
날이 밝은 내일 아침에 나가시라 달랜다.

대문을 밀치고 걸어 나가는 칠흑의 어둠속,

버스가 이미 끊긴 시골마을의 한밤,
아버지는 이참에 아예 단단히 갈라서겠노라고 큰 소리다.

나는 싸늘히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다독여 좀 잡으시라고 하니,

그냥 둬라,
내 열일곱에 시집와서
팔십평생 네 아버지 집 나간다고 큰소리 치고는 저기 저 산 등성이 넘는 것을 못 봤다.

어둠 속 한참을 쫓아 내달린다.
저만치 보이는 구부정한 아버지의 뒷 모습, 잰 걸음을 따라 나도 가만히 걷는다.
기세가 천리를 갈 듯 하다.

드디어 산등성이,
고요하게 잠든 숲의 정적과
뒤척이는 새들의 혼곤한 잠속,
순간 아버지가 걷던 걸음을 멈추더니
집 쪽을 향해 소리를 치신다.

에이, 이 못난 할망구야,
서방이 나간다면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이 못된 할망구야,
평생을 뜯어 먹어도 시원찮을
이 할망구,

뒤돌아 씩씩거리며 아버지는
집으로 천릿길을 내 닫는다.
지그시 웃음을 물고
나는 아버지를 몰고 온다.

어머니가 켜 놓은
대문앞 전등불이 환하다.
아버지는 왜, 팔십평생
저 낮은 산등성이 하나를 채
넘지 못할까

아들은 묻는다.
아버지 왜 저 산등성이 하나 못넘느냐고. 아버지가 답한다.
가장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안 되는 거라고.

딸이 묻는다.
왜 엄마는 대문 앞까지
전등불을 켜 놓느냐고.
어머니가 답한다.
남정네가 대문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들 딸이 묻는다.
그럴 걸 왜 싸우느냐고.

부모가 답한다.
물을 걸 물어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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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57세에 혼자가 되어버렸다.

나의 이혼소식에
쓰러진 아버진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고
그렇게
현명하셨던 엄마는
정신이 반 나간 아줌마가 되어 큰오빠 작은오빠 눈치보기 바빴다.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는
큰오빠 말에 그 큰집을 팔아 큰오빠에게 다 맡겼고

나 몰라라 하는
큰오빠 때문에
작은 오빠의 모든 원망을
다 감수해야 했다.

사이 좋았던 팔남매가
큰오빠 때문에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엄마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고 노름하는 아들한테 조차 할말을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걸 이해하는 난
엄마가 원하는대로
형제들에게 돈을 풀어주었고
그런 나에게 미안했던 엄마는 가끔 나에게 이런 말씀하셨다.

'널 낳지 않았으면
난 어떡할뻔했니'

'괜찮아 엄마,
엄마는 우리 여덞 잘 키웠구
큰오빠가 지금 자리잡느라고 힘들어서 그렇치, 효자잖어
이젠 새끼 걱정 그만하고 애인이나 만들어서 즐기고 살어!'

'난 애인은 안돼
니 아빠같은 남자가 없어'

그러던 엄마가
어느날 나에게 슬그머니 말씀하셨다.

'남자친구가 생겼어.
작년 해운대 바닷가 갔다가 만났는데 괜찮은거 같아서 가끔 같이 등산간단다.'

어쩐지...
자꾸 등산을 가더라.....
뭐하는 분인데?
'개인병원 의사인데 사별했데.'

'이번 엄마 환갑때 초대해봐.내가 언니 오빠들한테 말해놓으께 .'

우린 엄마 생신때
호텔 연회장을 하나 빌렸고
엄마 지인들과 여고 동창들을
다 초대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도,,,
엄마 남자 친구는 멋졌다.
그리고 어울렸고 아버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 더 좋았다.

'그집 아들들이
재혼을 원한다는데 어쩌지?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좀 그렇다 네.'

모두들 찬성이었다.
그런데 작은 오빠가
길길이 뛰기 시작했고

'안돼 엄마 그런게 어딨어,
우리 불쌍한 아버진 어쩌라구!
이 나이에도 남자가 필요해?

우리 자식 보며 살면 안돼?
창피해! 형은 장남이 돼 가지고
엄마 모시기 싫어서 그래?

내가 모실테니 걱정마
그러면 아버지 제사땐 어쩔껀데,

엄마!
아직 난 엄마가 필요 하다구!!!!'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미친 놈이 보기싫어 형제들은 다 가버렸고 소리지르며 욕을 퍼붓는 나를 엄마가 막으셨다.

"그만해라, 없었던 일로 하마."

그리고 다음 해!
어느날 술이 잔뜩취해
올캐와 싸웠다고 작은 오빠가 전화가 오고 가지말라고 말리는 나를 뒤로 하고 간 엄마는
다음날 병원 응급실에서 만났다.

새벽에 얼까봐 수돗물을 틀어 놓으러 나오셨다가 쓰러져 뒤늦게 발견 된 엄마!

우리 자식들은 중환자 실에 누워있는
혼수상태의 엄마를 처음엔 매일 붙어 있었지만 시간이 좀 흐르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에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슬슬 볼일들을 보기 시작했고
면회시간을 꼭 지켜 기다리고 있는건

병원을 맡기고 온
원장님 뿐이었다.

우린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기다릴 뿐이었는데 원장님은 엄마를 주무르며 계속 속삭였다

'박여사 일어나요.
우리 전에 시장가서 먹었던 선지국밥! 그거 또 먹으러 갑시다.

내가 사준
원피스도
빨리 입어 봐야지!'

병원에서
우리 형제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제 병원에서 해줄것은 없습니 다.

퇴원하셔야 됩니다.'
평생 '식물인간' 이라는 판정과 함께 어디로 모셔갈껀지를 정해 줘야 차로 모셔다 준다는 말에

모두들 헉!
큰 올캐가 먼저 말했다.
자신은 환자를 집에 모시는건 못한다고.

둘째 오빠가 말했다.
맞벌이라 안된다고.

장가도 안간
스물 여덞살 막내동생은
울기만 한다.

딸들 표정은
당연히 큰오빠가 해야지
본인들 하곤 상관 없는 이야기 였다.

오빠들은
'그동안 니가 모셨으니
계속하면 안될까?' 하는
ㆍ표정으로 날 본다

그냥 누워계시는게 아니라,
산소 호흡기를 꽂고 있어야 하니
모두들 선뜻 대답을 못했다'

난 결국 내 집인줄은 알지만
형제들 꼴을 쳐다보고 있는데,

'저~제가 감히 한마디 해도 되나 요?'

언제 오셨는지
우리곁으로 오신 원장님.

'제가 그때
박여사와 재혼을 말했을때
박여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직 우리 애들한텐
엄마가 필요한가봐요.
자식들이 내가 필요없다하면
그때 갈께요 했어요.

지금도
엄마가 필요하세요?
난 저렇게 누워있는 사람이라도
숨만 쉬고 있는 박여사가 필요합 니다.

나한테 맡겨 주세요.
내 병원이 박여사한텐 더 편할껍니다.'

작은 오빠가 통곡을 했다.
다른 형제들이 울기 시작했다.

결국 엄마는 퇴원을 못하고 돌아가셨다.

모두
저 마다 믿는 신에게 기도했겠지만
난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
엄마의 이뻤던 모습만 보고 먼저간 아버지는 잊고 엄마의 추한 병든 모습까지도 사랑한
이 원장님만 기억하고 가, 엄마!

엄마는
팔남매 키운 공은 못보고 가셨지만

여자로
사랑만큼은 멋있었어'

67세에 우리 엄마는
그 가슴 졸이며 평생 키운 팔남매가 아닌 몇년 만난 남자의 손을 잡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자식이
식물인간이 돼 있다면
부모는 무엇을 이유로 댈까.
우리 팔남매는 엄마를 모셔가지 못할 이유가 다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나도 그 입장이라면
그런 핑계를 대지 않았을까?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한테 묻고싶다.
'엄마~
또 다시 새 인생을 준다면 팔남매 낳을꺼야?

이 글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혼자보기엔 감동의 글은 아닌가요
그러나, 이 글은 우리 모두가 처한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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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일상다반사 2021. 2. 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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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꼴찌였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ᆞᆞ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
가배"~ 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
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알고 있었다.
고마해라. 민우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가 없다.
前 경북대 총장 박찬석

입춘이 지났습니다. 오늘도 날씨는 차갑지만 몸과 마음이 따뜻한 하루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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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후반의 지인이 지난해 늦여름 넘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졌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그곳에선 장기간 입원을 할 수 없어 서울 강남에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다 두계절을 보내고 며칠 전 퇴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입원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병문안도 제한돼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거나 가끔 먹거리를 보내드릴 뿐이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지인은 병상에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인에 따르면 70∼90대의 노인들이 모인 요양병원에서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 박사건 무학이건, 전문직이건 무직이건, 재산이 많건 적건 상관이 없단다. 누구나 똑같이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는 그곳에서는 안부전화가 자주 걸려오고 간식이나 필요한 용품들을 많이 받는 이가 ‘상류층’이란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받은 간식과 생필품을 의료진이나 같은 병실 환자들에게 나눠주는 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병실 계급은 그렇게 좌우된단다.

“내 옆자리의 할머니는 밖에서 교장 선생이었고 아들도 고위 공무원이라는데, 사과 몇알은커녕 전화도 거의 안 오더라. 그래서인지 내가 받은 과일이나 간식을 나눠주면 너무 감사하다면서도 민망한 표정을 지었어. 내가 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야단이라도 치고 싶었다니까. 몇달 아파서 요양병원에서 지내보니 왕년의 직함이나 과거사는 다 부질없더라고.”

지인의 말을 듣고 나도 깨달은 바가 컸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에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오늘에 충실하면 된다. 그런데 그 ‘오늘’은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안부전화나 문자를 보내는 일,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이 말년을 풍성하고 풍요롭게 보내는 보험이다. 그 보험은 전략이나 잔머리로 채워지지 않는다. 진심과 성의라는 보험료를 차곡차곡 모아야만 행복한 말년이라는 보험금이 내게 돌아온다. 반대로 자녀에게 공부나 성공만을 강요한 부모,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눈곱만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늘 따지기만 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고독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게 된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모두가 100세까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삶을 마감할 가능성은 오히려 매우 낮다. 대부분은 병상에서, 혹은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심지어 홀몸으로 쓸쓸히 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노후에 내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눠줄 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후의 행복이다. 결국 노후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관계’다.

최근 후배에게 점심을 사줬더니 후배가 “왜 항상 돈을 선배가 내느냐”고 물어왔다. 거기에 “저금해두는 거야”라고 답했다. 내가 나중에 아팠을 때 후배가 병실에 찾아오지 않더라도, 가끔은 안부전화를 걸어주거나 혹은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반갑게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 투자다.

코로나19 때문에 얼굴을 통 못 보는 친구들에게도 귀여운 이모티콘을 담아 축복의 문자를 보내본다. 나중에 돌아오지 않아도 내가 지금 기쁘면 그만이다. 물론 여기저기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투자하면 내게 되돌아올 가능성도 커질 테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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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 삼만원만 주고
가거라"! "없어요"

80살이 넘은 아버지가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사정을 했건만
아들은 박정하게 거절을
하였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이웃 노인들과
어울리다 얻어만 먹어 온
소주를 한 번이라도
갚아 주고 싶었다.

설거지를 하다 부자간의
대화와 시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을 훔쳐본 며느리는
한참 무엇을 생각하더니
밖으로 달려나갔다.

한참만에 버스를 막 타려는
남편을 불러 세워
숨찬 소리로 손을 내밀었다.

"여보. 돈좀 주고가요".
"뭐하게? "애들 웃도 사서 입히고
여고 동창생 계모임도
있어요".

안주머니에서 오만원 가량을
꺼내 해아리며
담배값이, 찻 값이, 어쩌니
대포 값이, 어쩌니 하는 것을
몽땅 빼앗아 차비만 주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는 아파트 양지바른
벽에 기대 하늘만 바라보시는
시아버지께
돈을 몽땅 내밀었다.

"아버님, 이 돈으로 드시고
싶은 소주도 잡수시고
친구분들과 대공원도 가시고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연신 눈물이 쏟아지려는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고마워서
말을 잊은 채 어떻게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날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왜 얘들 얼굴에
꾸정물이 찌찌하게 이렇게
더럽냐고 말했다.

그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얘들 꼴이 더러워져가고
있었다.

새까만 손등이며
며칠전 까지만해도
반드레하던 얘들이
거지꼴로 변해갔다.

남편은 화를 벌컥 내어
고함을 첬다.

"여편네가 하루 종일
뭐 하길래 얘들 꼴을 저렇게
만들어 놓았어"

남편의 화난 소리를 듣고 있던
아내도 화를 내어 남편애게
소리를 질렸다.

"저 얘들을 곱게 키워봐야
당신이 아버지께
냉정히 돈 삼만원을
거절했듯이
우리가 늙어서 삼만원 달래도
안 줄거 아니예요?

당신은 뭣때문에 얘들을
깨끗이 키우려고 해요?

아내에게 기가 질려버린
남편은 고개를 들지못하고
늙은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의 무정함을 잊은채
어서 방으로 들어 오라고
했다.

늙은 아버지는 "회사일이
고되지 않느냐?
"환절기가 되었으니 감기에
조심해야한다"고 어린에처럼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더 없는 사랑에

아들은 그만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독일 속담에도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는 말이 있다.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가를
늘 부모는 묻지만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은
자식들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자식들의 효성이
아무리 지극해도
부모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가 짐이 되고
효가 귀찮게만 생각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효는 예부터
가족을 사랑으로 묶는 밧줄과
같은 것이다.

효의 씨앗를 심고 가꾸는 일은
부모가 자식에게

"효"를 내리 실천해
모범을 보이는 일이
꼭 필요하다.
( 좋은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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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엄마
그리고 일곱 살 난 아들과 다섯 살 짜리 딸이 살았습니다.
어느날 아빠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등산을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응급수술을 받던 중 피가 필요했는데, 아들과 같은 혈액형은
딸뿐이었습니다.
다급한 아빠가 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오빠에게 피를 좀 줄 수 있겠니?"
딸아이는 이 질문에 잠시 동안 무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의사가 대성공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까지 딸 아이는 침대위에 가만히 누워있었습니다.
"네 덕분에 오빠가 살게 되었어!"
아빠의 말을 들은 딸이 낮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와! 정말 기뻐요.
그런데! 나는 언제 죽게 되나요?”
아버지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아니 "죽다니? 네가 왜 죽는단 말이냐?"
"피를 뽑으면 곧 죽게 되는게 아닌가요?"
잠시 숙연한 침묵이 흐른뒤 아빠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넌 죽을 줄 알면서 오빠에게 피를 주었단 말이냐?"
"예!~전 오빠를 많이 사랑하거든요."
아빠는 그 순간 두 눈에 감동의 눈물이 흘렀고 어린 딸을 꼭 껴안아 놓을 줄을 몰랐습니다.
아빠로서 그 어린 딸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안쓰러운지 ᆢ
요즘 신세대 어느 가정마다 자녀를 한명 또는 두명정도 낳는게 일상화 되었지만 ᆢ
예전 우리 부모님들은 적으면 5명 많으면 10명까지도 형제들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큰 누나가 막내를 키웠다고 할 만큼 연령차이도 많았고 형제들간에 싸워가면서 컸던 기억이 선합니다.
그러면서도 큰 형의 위엄은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부모들이 한 두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온갖 응석과 떼쓰기를 다 받아 주다보니 버릇이 없어지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로 성장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다섯 살난 딸 아이의 목숨을 건 결단은 시사하는바가 큽니다.
오빠를 위한 어린 소녀의 목숨을 건 결심은 자기밖에 모르는 요즘 세태에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의 자녀교육의 중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 할 때입니다.
당신 자녀들의 형제간의 우애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계십니까?
이기적인 똑똑함보다는 바른 인성과 겸손한 예의바름이 훌륭한 자녀교육이 아닐까요?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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