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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
 
어느날 손자가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옛날에 어떻게 사셨어요? 

- 과학기술도 없고 
- 인터넷도 없고 
- 컴퓨터도 없고 
- 드론도 없고 
- 휴대폰도 없고 
- 카톡도 없고 
- 페이스북도 없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세대가 오늘날 

- 인간미도 없고 
- 품위도 없고 
- 연민도 없고 
- 수치심도 없고 
- 명예도 없고 
- 존경심도 없고 
- 개성도 없고 
- 사랑도 없고 
- 겸손도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는 안 살았지 
 
오늘 너희들은 우리를 '늙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참 축복받은 세대란다. 
 
우리 삶이 그 증거야.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지 않았고 
방과 후에는 우리 스스로 숙제했어.

해질 때까지 들판에서 뛰놀고 페이스북이나 
카톡 친구가 아니라 진짜 친구랑 놀았다. 

목이 마르면 생수가 아닌 샘물을 마셨고 
친구들이 사용한 잔을 함께 사용해도
아픈 적이 없었다. 
 
빵, 과자를 많이먹어 비만하지도 않았고 
맨발로 뛰어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장난감은 직접 만들어 놀았고 
부모님은 부자가 아니셨지만 많은 사랑을 주셨다. 
 
휴대전화, DVD, Xbox, 플레이스테이션, 
비디오게임, 개인 컴퓨터, 인터넷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가 있었지. 
 
친구들이 초대하지 않아도 
친구집을 찾아가 밥을 얻어먹었다. 
 
우리는 부모의 말씀도 듣고 
자녀들의 말도 들어야 했던 마지막 세대야. 
 
그래서 독특한 세대고 이해심도 많단다. 
우리는 한정판이야 
 
꽃은 피어야 향기가 나고
인생은 즐겨야 행복합니다    
즐거운 인생 행복 하시길^^ 💕💕
 
- 좋은 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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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 문 **

일상다반사 2021. 5. 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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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 문 ****

내가 어렸을 때 시골집에는 대문이 있고 뒤쪽이나 옆모퉁이에 샛문이 있는 집이 많았다.
우리 집에도 뒤뜰 장독대 옆에 작은 샛문이 하나 있어 이곳을 통해 대밭 사이로 난 지름길로 작은집에 갈 수 있어서 자주 드나들었다.

이 샛문은 누나들이나 어머니가 마실을 가거나 곗방에 갈 때, 그러니까 어른들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옛날 어른들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속아 준 것 같다. 이것은 마음의 여유이고 아량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열세 살 때의 일이다. 황금물결 넘실거리던 가을 들녘은 추수가 끝나자 삭막하였지만, 넓은 마당은 다니기도 어려울 만큼 나락베눌로 꽉 차 있었다. 하늘 높이 쌓아 놓은 나락베눌은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흐뭇했는데, 여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한 어른들이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을 것 같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신나게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늦가을 어느 날 타작을 하여 나락을 마당에 쌓아 놓고 가마니로 덮어 놓았다.
다음날 아침 어수선한 소리에 나가 보았더니 때까우(거위)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대문 앞에 죽어 있었다. 원래 암놈은 목소리가 크고 맑아 소리를 쳐서 엄포를 놓거나 주인에게 구호 요청을 하고, 수놈은 허스키 목소리를 꽥꽥 소리를 지르며 목을 길게 빼고 날개를 치면서 덤벼들어 물어뜯는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도 무서워서 우리집에는 얼씬도 못했다. 웬만한 개보다도 사나워 집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무렵은 식량이 귀하던 때라 도둑이 성해 개나 때까우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날 밤 도둑이 든 것이다. 때까우가 도둑놈 바짓가랑이를 물자 낫으로 목을 후려치고는 나락을 퍼담아 가지고 간 것이다. 그날 밤은 초겨울 날씨로 바람이 몹시 불고 좀 추웠다. 싸락눈이 내려 발자국이 눈 위에 선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강아지마냥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발자국은 고샅을 지나 맨 꼭대기 오두막 집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되돌아서 발자국을 지우며 오시는 것이었다. 평소 호랑이같이 무섭고 급한 성격이라 당장 문을 차고 들어가 도둑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내어 눈밭에 팽개치거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높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멍석말이라도 했어야했다. 아니면 경찰서로 끌고 가서 곤욕을 치르게 하거나 형무소라도 보냈음직한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짐을 지고 돌아오시며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런 짓을 했을라고”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소견이지만 여름 내내 불볕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농사지어 탈곡해 놓은 나락을 훔쳐 간 도둑을 당장 요절이라도 냈어야 평소 아버지의 위엄이 설 것 같았는데…….,
그런데 미지근하고 우유부단한 행동이 두고두고 못마땅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생각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아버지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어릴 수 있었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이고 지혜라는 것을.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는 뜻도…….

경행록에도 “남에게 원수를 맺게 되면 어느 때 화를 입게 될지 모른다”고 했고, 제갈공명도 죽으면서 “적을 너무 악랄하게 죽여 내가 천벌을 받게 되는구나”라고 후회하며, 적도 퇴로를 열어주며 몰아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날 이후 H씨는 평생토록 원망과 원한 대신에 나락 한 가마니 빚을 지고 아버지에게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궃은일 마다 않고 해냈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세상일은 꼭 생각같이 되는 것이 아니여. 이치나 원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단다. 남의 사소한 실수 같은 것을 덮어 주지 못하고 몰아세우고 따지는 말은 삼가야하고, 사람을 비난할 때도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아,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아, 상대방이 달아날 구멍을 조금 남겨 놓아야 한다”고...

우리 일상생활에도 샛문과 같은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동양화에서 여백은 무한한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 여백은 보는 이의 몫으로 구름. 새. 꽃, 나아가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도 그려 넣을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다. 우리는 수묵화의 넉넉함과 아름다움은 즐길 줄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비우지 못하고 항상 위만 쳐다보고 달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무소유가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고, 여유를 가진 삶이 풍요를 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 너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은 타인이 접하기가 어렵고 경계의 대상이 된다. 공자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남의 옳고 그른 것을 살피다 보면 친구가 남아있지 않는다’고 했다.
때로는 약간 엉성하고 빈틈이 있어야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동화도 되지 않을까?
아내가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미처 못 채운 와이셔츠 단추도 채워 줄 수 있도록 빈틈을 남겨 놓는 것도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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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그대로이나 인생은 무상하다

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問. 665?-712)은
「유소사」(有所思)에서 꽃을
보고 인생무상을 노래했습니다.

해마다 피는 꽃의 모습은
똑같으나(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꽃을 보는 사람은 같지않네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피는 꽃의 모습은
변함없이 같으나,
해마다 그 꽃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순시대에 피었던
복사꽃과 진달래의 모습은
하나도 변함이 없이
해마다 옛 모습 그대로 피건만,
그 꽃을 보던 사람은 이미 죽었고

또한 작년에 그 꽃을 보았던
사람이 금년에 다시 보아도
꽃의 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얼굴 모습은 변하여
작년보다 더 늙었음을 한탄했습니다.

송지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젊은 홍안 소년들에게 말하노니
(寄言全盛紅顔子)
반쯤 죽은 흰머리 노인을 불쌍히 여겨라
(須憐半死白頭翁)
이 노인 흰머리는 정말 가엾은 것이니
(此翁白頭眞可憐)
그도 옛날엔 홍안의 미소년이었단다.
(伊昔紅顔美少年)

이 세상에 만년 청춘은 없습니다.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산하에 온갖 꽃들이 피었다는 것은 곧 봄이 갈 것을 뜻합니다.

자연은 무한한데 인간은 유한합니다.
백년도 못사는 세상
너무 아등바등할 것 없습니다.

권력과 명예와 돈을 가지고
저 세상에 갈 수 없습니다.
움켜쥐려고만 하지 말고
베풀며 사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세월도 우리 인생도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당신의 '꽃'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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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 가면 어머니는
꼭 밥을 먹여 보내려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친정에 가면
부엌에도 못들어 오게 하셨고

오 남매의 맞이라 그러셨는지
남동생이나 당신보다
항상 내 밥을 먼저 퍼주셨다.

어느 날 오랜만에
친정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여느 때처럼 제일 먼저 푼
밥을 내 앞에 놓자

어머니가
"얘 그거 내 밥이다." 하시는 것이었다.

민망한 마음에
"엄마 왠일이유?

늘 내밥을 먼저 퍼주시더니...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게 아니고, 누가 그러더라.
밥 푸는 순서대로 죽는다고.
아무래도 내가 먼저 죽어야 안되겠나."

그 뒤로 어머니는
늘 당신 밥부터 푸셨다.

그리고 그 이듬 해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그 얘기를 생각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남편과 나, 둘 중에
누구 밥을 먼저 풀 것인가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 남편 밥을 먼저 푸기로 했다.

홀아비 삼 년에 이가 서 말이고 과부 삼 년에는 깨가 서 말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뒷바라지 해주는 아내없는 남편은 한없이 처량할 것 같아서 이다.

더구나 달랑 딸 하나 있는데
딸아이가 친정아버지를 모시려면 무척 힘들 것이다.

만에 하나 남편이 아프면
어찌하겠는가?
더더욱 내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통스럽더라도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남편을 끝까지 보살펴 주고 뒤따라 가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때부터 줄곧 남편 밥을
먼저 푸고 있다.
남편은 물론 모른다.

혹, 알게되면 남편은
내 밥부터 푸라고 할까?

남편도 내 생각과 같을까?

원하건대 우리 두 사람, 늙도록 의좋게 살다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따뜻한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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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취업 준비생이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라서 그냥 부모님께 뭐라도 하는 것을 보여주려 도서관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5시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약속이 있어 나가셨고, 아버지만 계셨다. 아버지는 맛있는 것 시켜 먹자고 하셨다. 돈도 못 벌면서 부모님 돈으로 저녁을 때워야 하는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함께 소주 한잔하자고 하셔서 족발과 쟁반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시킨 지 1시간이 넘는데도 음식은 도착하지 않았다. 난 조금 짜증이 나서 족발집에 전화를 걸었다. 떠난 지 30분이 넘었는데 이상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라는 생각으로 아버지와 어색하게 TV를 보며 30분을 더 기다렸다. 그제야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좀 따지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배달 온 사람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에 홀딱 젖어있었고, 대뜸, "죄송합니다. 오던 길에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져서 수습하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음식은 먹기에 민망할 정도로 불어 있었고 또 엉망이 되어있었다. 뭐라 한마디도 못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현관으로 나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음식을 시킨 저희 탓이요. 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당신의 책임감으로 오늘 우리 부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음식값과 세탁비까지 건네주었다.

그러자, 배달원은 순간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흘리다가 몇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고마울 일이 하나 없는 코로나와 무직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감사한 마음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아버지 같은 분 계실까?

아들은 이글 끝에 아버지의 기품있는 태도에 감격하여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절대 절대 절대로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다른 사람의 직업을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걸 항상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참조: ‘아들도 감동한 아버지가 배달원 대하는 태도’, 유튜브 채널, ‘KMIB’]

이렇게 사랑이 가득한 마음은 타고나는 걸까요? 아니면 살면서 삶 속에서 노력으로 체득하는 것일까요? 한 없이 높은 곳에 자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저렇게 아낌없이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는  품격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가치가 돋보이는 것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곳에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스스로를 사랑과 겸양으로 쌓아가는 도리...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 이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가도 우리가 지켜가야 할 참 가치일 것입니다.

나보다 약하고 어려운 이, 슬프고 외로운 이를 절대 외면하지 않고 측은지심으로 가슴에 품는 사랑의 마음, 우리 가슴에도 저분의 아버님처럼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랑이 넘쳐 세상을 밝히는 고운 향으로 피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삼천리 방방곡곡이 그렇게 되는 날이 오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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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인생

일상다반사 2021. 4. 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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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 햄버거 창립자였던 '레이 크록'은 30년 동안 종이컵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53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맥도널드 1호점을 시카고 근교에 개점했습니다.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의 창립자인 '할랜드 샌더스'는 체인점을 모집하기 위해 직접 차를 몰고 미국의 전역을 달렸습니다.

그가 65세가 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007시리즈를 탄생시킨 '이언 플레밍'은 43세에 비로소 낡은 타자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소설이 빛을 보게 된 것도 54세가 지나서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뿌리」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는 흑인의 비참한 역사를 알리기 위해 12년 동안 연구와 집필에 매달렸지만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는 출판사는 없었습니다.

무려 100통이 넘는 거절 편지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작품이 책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가 55세 때 말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상록수와 같은 인생을 사십시오.

우리는 마지막까지 늘 푸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열정이 지치지 않는다면 내 인생의 시계도 쉽게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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