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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일상다반사 2022. 12. 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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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런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사업을 하는 지인의 어머니는 98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말년에 형님 내외가 어머니를 모셨는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자꾸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리고 이상한 행동을 해서 형님과 형수가 무척 힘들어 했습니다.

둘째 아들인 지인은 그 당시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이혼을 하고 혼자 노숙인처럼 떠돌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형수에게 전화를 걸어 찾아뵙겠다고 말했습니다.

형수는 어머니에게 그 말을 전했고 둘째 아들이 온다는 말에 어머니는 들떠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도 둘째 아들이 오지 않자 할 수 없이 어머니 식사를 먼저 차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식사를 하는 척 하며 음식들을 몰래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보고 놀라서 말렸지만 어머니는 악을 쓰며 맨손으로 뜨거운 찌개 속의 건더기들까지 집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누가 빼앗기라도 할까 봐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어서야 둘째 아들이 왔고 "어머니 저 왔습니다"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어머니가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온통 한데 뒤섞인 음식들을 꺼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아가, 배고프지? 식기 전에 어서 먹으렴."

어머니의 손을 봤더니 뜨거운 찌개를 주머니에 넣느라 여기저기 데어 물집이 잡혀 있었습니다.
아들은 명치께가 찌르듯 아파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어머니를 덥석 안았습니다.

어머니는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둘째 아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나 봅니다.
어머니는 자식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는 내 한 몸 부스러지는것쯤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던 지인은 어머니의 그 물집 잡힌 손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생수 배달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튼실한 중소기업을 일궈내고 당당히 일어섰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났지만 지금도 힘든 날이면 어머니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고 했습니다.
"아가, 배고프지? 식기 전에 어서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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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禁備嶺)금비령

준비 없이 산을 넘지말라.

경북 안동시 풍산읍 산이 너무 험하고 고개가 높아서 한번 넘어본 사람은
다시는 넘지않는 재(嶺)로
유명했습니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영조(英祖)때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린 인물입니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어명으로 민정을 살피러
지리를 전혀 모른채 초행 길로 경상도 풍산땅에
갔습니다.  

험한 고개를 넘다가 다 넘지 못하고 해가 저물어 산중턱에서 지치고 허기져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짐승들 울음 소리만 계곡에
울려 퍼젔습니다.
주저앉은 암행어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 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배는 고프고 지치고
목은 타들어 갔습니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기를쓰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도저히 말을듣지 않았습니다.
목은 마르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높은 산에서 물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어쩔수 없이  그자리에서 꼬박 사흘을 미동도 못하고 오가는 사람도 없는 산중 길가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도와 주시오.''
큰소리로 구원을 요청
하려고 생각 했지만, 탈진하여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가끔
인기척이 날때마다
''물! 물!'' 을 외쳐 보지만
구원을 요청하는 박문수어사의 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더 작아 누구의 귀에도 들릴 수 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젠 틀렸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
습니다. 삶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나 징그러운 뱀을 쳐다 보듯 별 관심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최후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제 틀렸어! 체념한듯 지긋이 눈을 감고 삶을 포기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대여섯명의 아낙들이
산에 나물을 캐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웬 사람이 여기있지?''

''옷차림을 보니
거지인가 봐!''

''죽었나?''

"글쎄?''

그런데 그 남자는
"물! 물! 물!'' 하고 목청껏
외쳤습니다.
그러나 기운이 없어 모기보다 작은 소리로 외치는 어사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작은 목소리를 알아들은 한 젊은 아낙이 있었습니다.

"딱하기도 해라!"
이 높은 산골짜기에 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 사람의
곁에 다가가서 퉁퉁 불은 하얂고 풍만한 젖을 꺼내
그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 그 남자에게 젖꼭지를 물렸
습니다.

옆에서 보고있던 같이갔던 아낙들은 혀를 찼습니다.

"쯧" "쯧"

''어머, 세상에!''

''망측해라! 하며

모두들 수근거렸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외간 남자에게 젖을물려!''

아낙들은 저마다
놀란 얼굴로 빈정댔
습니다.

쓰러져 죽어가든 그 남자는
젖꼭지가 입에 닫자마자
갓난 아기가 어미 젖을 빨듯
품에 파고들어 얼마나 세차게 빨든지 젖꼭지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한참동안 정신없이 빨더니 다소 갈증이 가시게 되어
정신이 드는듯 했습니다.

''부인, 정말 고맙습니다.''

생명의 은인인 그 아낙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표
했습니다.

그 여인의 마음은 죽어가는 그 사람을  산중에서
홀로 죽어 가도록 그냥두고
산길을 내려 갈 수 없었습니다.

무거운 나물 보따리를 이고,
그 남자를 부축하며,
고갯길을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 갔습니다.

한편, 앞서 내려갔던 아낙들은 동네앞에 모여
입에 거품을 물고,
젖을 먹여준 그 아낙에 대해 입방아를 찧으며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있지?''

''그래요"

"서방 있는 년이
그따위 짓을 할 수가 있어?''

못된 년이야! 하며 그 여인을

"몹쓸년"
"화냥년" 하며 욕을 하였습니다.

그 말은 남편에게 까지
전해지고 남편은 참을 수 없이 분노 했습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빠드득 갈았습니다.

''절때로 용서하지 않겠다"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다?''

"오면 죽여 버리겠다"며
도착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아내는
머리에는 산나물 보따리를 이고 그 남자의 어께를 부축하고 동네 어귀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수군거리던
동네 사람들 사이로 돌진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달려들어

''이 화냥년!''

"그게 할짓이냐?"

"생전 모르는 놈에게 젖을 먹였어?"

남편은 흥분하여
아내를 마구 때렸습니다.

아내는 정신없이 얻어맞고
이마에는 피까지 났습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아내는 애웠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제발 !"하며

남편 앞에 무릅을 꿇고
빌었습니다.

겨우 살아나 생명을 구하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나
남편의 매질을 가까스로 막으며 말했습니다.

''잠시 참으시고,
내말 좀 들어 보시오!''
하며 말렸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불난데 기름을 끼얹은듯
더욱 화를 냈습니다.

''뭐라고?'' 이 자식아!"하며

  다짜고짜 박문수어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습니다. 어사는

"어이쿠!''

  하며 쓰러젔습니다.
  몸이 온전히 성치못한  
  암행어사 박문수는 코피를
  쏟으며 벌렁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더욱 화를 못참아

''이 새끼! 죽여 버리겠다!''
  남자는 쓰러져 신음하는
  박어사를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을 또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을뿐  
  아무도 그 싸움에 나서서
  말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앗!''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입에서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암, 암행어사다!''

   이 말에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
   났습니다.

   땅에 쓰러진
   암행어사 박문수가  
   발길질을 피하느라
   몸부림 치면서
   허리춤에 차고있던
   반짝이는  암행어사
   마패를 사람들이
   본 것입니다.

마구 발길질을 하던
남편의 얼굴은 금세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감히 암행어사를
발길질을 하고
코피까지 나게 한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사람들도  모두 얼빠진
모습들이었습니다.

''아이고!''
  남편은
  암행어사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습니다.

  "어사님 죽을죄를
   졌습니다. 목숨만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암행어사 박문수는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더니
  무릅꿇고 있는 남편을
  보았습니다.

  이 순간 암행어사  
  박문수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  백성들이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이 귀하고
  소중할진데  어찌하여
  풀밭에 개구리 보듯
  아무 관심 없다가

  이까짓 어사 마패에는
  왜? 저렇게 관심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어사 마패만
무서워하는 구나!,

사람들이
무서워 하는 것은
소중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이 암행어사
마패야.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근엄하게
그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당신의 아내가
아니었으면 저 산속에서
죽고 없었을 것이오!

난 오늘 당신의 아내
덕분에 목숨을 건졌소."

''당신의 아내는 실로
   아녀자로서 행하기
   어려운 자비를 베풀어
   나의 목숨을 구해 주었오.''
  
   당신의 아내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오!

  ''그러나 오늘 당신의
  행패가 너무 극심하여
  용서 할 수 없소.

  전, 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을
  그렇게 때리는 법이 있소?''

  "무고한 사람을 때린 죄가
   매우 크오 당장 벌을 줄 수
   있으나 당신 아내의 은혜
   때문에 오늘은 이만
   가겠소.

   그동안 집에서 근신하고
   기다리시오'' 라고 하고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아이구!
   이제 죽었구나''
   암행어사를 때리고
   발길질까지 한 남편은
   부르르 떨며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큰 죄를 받을  운명에 처해
   지옥문 앞에라도 서 있는
   심정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관가에서 그에게 출두
   명령이 내렸습니다.

   동헌 관가에 나아가
   부부가 나란히 앉아
   벌벌 떨고 있는데
   암행어사가 앉았습니다.

   부부는 납작 업드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요.

   그러더니 어사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부디,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
   습니다. ''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오.
   사양말고 받아 주시오.

   두분을 위하여 얼마간의
   전답을 준비하였으니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
   주시오.''

   이건 어찌된 일인가?
   꿈인가 생시인가?
   큰 죄를 받을줄 알았던 남편은 아내덕에
   죄를 면하게 되어 감격
   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후에 전설
  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부부는 행복하게
  일생을 잘 살았다고 합니다.

  암행어사가 죽을뻔 한 그 고개를
  사람들은 오늘날
''금비령(禁備嶺)''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금비령(禁備嶺)의 뜻은
  준비없이는 그 고개를
  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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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어라..! (어느 요양병원 의사가 쓴 글)

우리는 나이가 들고
서서히 정신이 빠져 나가면
어린애처럼 속이 없어지고

결국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식이 있건 없건
마누라 남편이 있건
돈이 있건 없건
세상 감투를 썼건 못썼건
잘났건 못났건

모든 분들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고려시대에 60세 넘어
경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밤만 축낸다고 모두들 자식들의
지게에 실려 산속으로 고려장을
떠났다고들 하는데,

오늘날에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노인들의
고려장 터가 되고있다.
한번 자식들에게 떠밀려 그곳에 유배되면
살아서 다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그곳 요양원이 고려장 터 아니고 무엇이랴!..

그 곳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자식들에게 떠밀려 가는 곳이다.

자식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갈 곳은 그곳 밖에 없다.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까...


아래 글은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어떤 의사가 쓴 글이다.

요양병원에 면회 와서 서 있는
가족 위치를 보면 촌수가 딱 나온다.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이것저것 챙기는 여자는 딸이다.
그 옆에 멀쭘하게 서있는 남자는 사위다.

문간쯤에 서서 먼산 보고 있는
사내는 아들이다.
복도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는 며느리다.

요양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는 부모들
그리고 이따금씩 찾아가서 살뜰히
보살피며 준비해 온 밥이며 반찬이며
죽이라도 떠먹이는 자식은 딸이다.

대개 아들놈들은 침대 모서리에 잠시
걸터앉아 딸이 사다놓은 음료수 하나
까 처먹고 이내 사라진다.

아들이 무슨 신주단지라도 되듯이
아들 아들 원하며 금지옥엽 키워 놓은 벌을
늙어서 받는 것이다.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는 세상인 것을
그때는 왜 몰랐던가.

요양병원 요양원 오늘도 우리의 미래이다.
수많은 그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의미 없는 삶을 연명하며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도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남의 이야기로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천만의 희망의 사항일 뿐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두고 보세요!

그래도 어쩌랴 내 정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라도 돈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보고
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좋은 친구들과 즐겁게 재미있게 살다가야지
조금이라도 남은 인생 최선을 다해
헛되이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어느 요양병원 의사가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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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일상다반사 2022. 10. 1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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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독거노인이 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다.

남편이 그렇게 타계 했고,
내가 그렇게 남겨졌다.
100일 전의 일이다.

팔십대인 우리 부부의 나이로 보아서는
남편이나 아내인 나에게,
그리고 어느 노년들에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부부는 두드러지게 삶의 의욕과 대비가 달랐다.

남편은 모기에 물려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몸을 움직여 보고
혹시 불편한 곳은 없나 점검을 한다.

남편은 몸을 신생아처럼 관리한다.
그의 좌우명중 첫째는 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음이 완치에 이를 때 까지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편 아내는 어떻게 해서라도 병원에 가는 것을 피한다.
웬만한 병은 자연 치유가 되며 더러는 죽는 날 까지
같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영양식이나 건강식은 쓰거나 역겨워도
관계없이 잘 먹는다.
아내는 세 끼의 밥도 소식으로 한다.
남편은 운동을 거르지 않고 충분히 한다.
아내는 산책이나 걷는 것 조차도 충실히 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남편은 세상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던 사람이다.
아내는 염세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의욕적인 삶의 태도는 아니다.

누가 보던지 이 집은 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바뀐 것이 분명하다.

남편은 나이가 들어 혼자가 되더라도
건강하게 살 준비를 완벽하게 갖춘 상태다.

김치를 맛있게 담글 줄 안다.
몸에 좋은 영양식도 만든다.
여러가지 밑반찬과 저장 음식도 만든다.
사골을 끓이고 백숙도 끓여낸다.
모두 아내에게서 배운 것이다.
기초는 아내에게서 배웠지만 인삼 ,버섯, 삼채, 생강 등
보약제 첨가물은 남편이 연구해서 넣는다.
우리집은 늘 보양식 수준의 냄새가 배어있다.

남편은 세탁기도 돌린다.
청소는 배우지 않았지만 도우미를 불러 시킬 줄 안다.
남편은 건강관리에 무심한 아내에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충고를 한다.
“당신 죽으면 예쁘게 염해서 보내주고 곧 따라갈께.
멀리 가지 말고 가까이에 있어….” 라고 한다.
확신에 차 있는 말투였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그가 훌쩍 내 곁에서 떠났다.

병명은 폐렴이라고 하지만 그저 노환이라고 생각한다.
젊었다면 거뜬히 이길 수 있었을 테니까.

백일이 지나고 넉 달째로 접어든다.
둘이 살다가 혼자가 됐다. 남편의 방은 그대로다.
남편만이 보이지 않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심심하다.

남편은 삶의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TV를 많이 본다.
특히 음식 프로를 본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시장에 간다.
식재료와 양념을 빠짐없이 잘 사온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대량으로 사오는 것이 문제다.
작은 용량의 것은 사지 않는다.
식초도 대병으로 사고 참기름도 대통으로 사왔다.
남편의 눈에는 적은 용량의 것은 양에 차지 않는다.
모든 것이 커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 했다고 칭찬한다.
일을 거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타박만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알 때 까지 기다린다.

남편은 전화 걸기를 좋아한다.
고향의 어릴 적 친구부터 외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까지 안부 전화를 한다.
남편이 관리하고 있는 친지는 약 100명 정도 인 것 같다.
그런 관계로 밖에 나가서 남편과 통화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무엇이고 사는 것을 무척 좋아 한다.
과일과 과자 등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 하는 것들을 많이 산다.
“당신 좋아하는 거야.
“ 아주 비싼 태국산 애풀망고를 들고 들어온다.
그러나 먹기는 남편이 먹는다. 그리고 다시 사온다.
살 때는 아내가 좋아 할 것을 생각하고 사지만
먹을 때에는 잠시 아내를 잊고 만다.
그러나 언제나 아내 것을 사온다.
오늘도 포도를 사왔다고 했다. 근데 보이지 않는다.

“여보 포도 사왔다며 어디있어요.?”

“응, 그것 내가 먹었어, 또 사다줄께…”한다.

그러던 남편이 없으니 주전부리가 떨어졌다.
그동안 남편 덕에 잘 살았는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살게 되려는지….?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맛있고 비싼 것을 사온다.
나도 남편을 위해서 뭔가를 사야 한다.
그래야 냉장고가 채워진다.
그러나 남편이 없다. 먹어 줄 사람이 없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 냉장고가
채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일은 딸이 온다고 하니 조금 준비를 해야겠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가면서 마스크 착용을 안했다.
급히 뛰어 들어오며
“여보 , 마스크~” 하고 남편에게 마스크를 집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남편은 없다.
아직도 남편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한다.

‘여보, 나 심심해.’

오래 같이 살던 부부에게는 하루라도
먼저 떠나는 사람이 승자다.
남편은 결승선까지 와서 갑자기 스케이트의 날을
피니쉬 라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숏트랙 빙상 선수처럼 운명의 결승선을 넘어 들어갔다.
남편은 나를 밀치고 자기의 오른편 다리를 쭉 뻗어
넣은 것이다.

그는 운명의 선을 통과했고 나는 낙오됐다.
그래서 돌싱이 됐다. 남편의 반칙이다.

나는 오늘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미술 공부는 일주일에 한번 지도를 받는다.
선생님은 어떤 그림을 배우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초상화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남편의 초상화를 그려 보려고 한다.
그리는 동안 마주 앉아서 못다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서다.
아버지와 남편에게는 할 말이 많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시집살이하면서 효도 못한 것을
사과드리고 싶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왜 거짓 말을 했냐고 따져 보려고 한다.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나는 믿었었다.

나를 먼저 보내고 뒷정리하고,
곧 뒤따라 갈테니 멀리가지 말라던 그 말,
그 변명을 꼭 듣고 싶다.
일주일에 한번은 의도적으로 외출을 하려 한다.
외출복을 차려 입고 격조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며칠 안으로 벗나무에 꽃송이가 벌어지는 것도 보겠고….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가 그리고 싶은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을 때 까지 분발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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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

일상다반사 2022. 10. 1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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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고귀한 사랑

노래하는 가수
조용필씨의
명곡인 '비련'에 얽힌
일화를 공개한다.

조용필씨의 전 매니저인
최동규씨가
과거 조용필 4집
발매 당시
인터뷰했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조용필씨가
과거 4집 발매 후
한창 바쁠 때,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 병원장은
자신의 병원에
14세의 지체장애
여자 아이가 ~

조용필씨의
4집에 수록된
"비련"을 듣더니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입원 8년 만에
기적같은 반응으로
처음 감정을
나타내어 보인 것이었다.

이어 병원 원장은
"이 소녀의
보호자 측에서
'돈은 원하는 만큼 줄테니
조용필씨가 직접
이 소녀에게 비련을
불러 줄 수 없냐?'며

아니면
잠깐와서 얼굴이라도
보게 해 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다"고
전했답니다.

매니저 최동규씨는
"당시 조용필씨가
캬바레에서
한 곡을 부르면
지금 돈으로
3,000만원~4,000만원 정도를 받았다"며,

그런데
조용필씨에게
매니저 최동규씨가
이 얘기를 했더니
피던 담배를 바로
툭 끄더니,

곧 바로
'그 병원으로
출발을 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날 행사가
4곳이었는데,
모두 취소하고
위약금 물어주고는,

시골 요양병원으로
단숨에 달려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병원 사람들과
환자의 가족이 놀란 것은
당연했지요.

조용필씨는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사연 속의 소녀를
찾았습니다.

소녀는
아무 표정도 없이
멍하니 있었는데,
기적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조용필씨가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자
잠시 전까지
그렇게 무표정이던
그 소녀가
펑펑 운 것입니다.

소녀의 부모와
주위의 사람까지도
울음바다였습니다.

조용필씨는
여자 애를 안아주고
싸인 CD를 주고서 차에 타려는데,

여자 아이 엄마가
"돈은
어디로 보내면 되냐?,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용필씨는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더 비쌉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돈보다 귀한 것은
어려운 분들에게
감동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행복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아름다운 사연의 글인데
또 다시 읽어도 감동의
물결이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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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불효교(孝不孝橋);효 불효 교    

뼈대 있는 가문이라 하여
어린 나이에 시집 왔더니

초가 삼간에 화전밭
몇 마지기가 전재산 이었다.

정신없이 시집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 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이다.

아들 여섯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 잡았을 때

시름 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유복자 막내 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 가기는
더 바빠졌다.

혼자서 아들 일곱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일곱이 쑥쑥 자랐다.

열여섯 큰 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 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 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

일곱 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 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이다.
베개를 부둥켜 안아봐도,

허벅지를 꼬집어 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농익은 40대 후반 유씨댁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맛을 알게된 것이다.

일곱 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젖은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 왔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일곱 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 뼈를 사다 고아 봉양을 다했다.

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일곱이 잠든 후 집을 빠져나와 범골로 향했다,

유씨댁은 깜짝 놀랐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일곱 아들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경상북도 사적
제 457호 지정)이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다.

요즈음  자식들은
우리들에게  무슨
다리를 놓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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