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노래자랑!" 그 목소리 못듣는다.. 영원한 MC 송해, 95세로 별세'에 해당되는 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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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방송인 송해가 지난해 11월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열린 KBS 1TV '아침마당'을 마치고 방송국을 나서며 정겨운 손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눈 감기 전에는 반드시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던 최장수 MC 송해(95·본명 송복희). 그가 8일 결국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지난달 14일 건강 문제로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한 상태였다.

1988년부터 34년간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 4월 말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돼 5월 공식 공표됐으니, 이젠 진정 세계가 인정한 MC다. 그가 마치 전 국민을 호령하듯 “전구우욱~”을 외치고는 “빰 빰빰 빰빰 빰~빰~”하는 악단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빠라밤 빠라밤 빠라밤빰 빰빰 빰빰~”을 따라 부르게 하던 전국민의 프로그램. ‘일요일의 남자’라는 애칭도 붙었다.



서너살 꼬마부터 백살 어르신들까지 송해 앞에서 ‘스타’로 변신했다. 송해가 활짝 웃으면서 마이크를 건네면 기적이라도 일어나는 듯, 큰 무대에 바짝 얼어 입을 열지 못했던 이들에게 청산유수처럼 말이 흘러나왔고 숨은 끼가 나왔다.

‘미스터트롯’(2020)의 스타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김희재, 김수찬은 물론 ‘미스트롯’(2019)의 송가인, 국악소녀 송소희, 오마이걸 승희와 별도 전국 노래자랑이 낳은 스타들이다. 송해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출연진의 삶을 끝까지 귀를 기울여 새겨듣고는 오래된 친구처럼 풀어냈다. 흥에 겨운 송해도 춤사위와 노래 솜씨를 곁들이며 분위기를 돋웠다.

송해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천상 예능인이자, 상대를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그의 친화력을 칭송한다. 깊은 내공 뒤에 따라붙는 찬사다. 과거 신재동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은 “딴따라라는 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라 했고, 후배 MC 강호동은 송해와의 첫 만남을 회고하면서 “보자마자 씨름을 하자고 했던 송해 선생님”이라고

요즘 식의 ‘유튜브 먹방’도 송해 앞에서 명함도 못내민다. 전주에선 한정식이 그득하게 차려진 한 상과 함께, 스물 셋 젊은 출연진이 “송해 성님, 나가 엊그제 제대했는디 성님 주려고 한상 차려 왔응께 한번 잡숴봐”라는 이야기에 무대에 털썩 주저앉아 장단을 맞추는 가 하면, 무대 위 펼쳐놓은 휴대용 가스렌지 위에서 즉석에서 구워주는 고기쌈을 한입 크게 베어물고, 경운기를 몰고 오는 도전자를 맞아 수박과 딸기, 인삼 등을 먹기도 했다.

전국 팔도 안다녀 본 곳이 없는 그였다. 평양도 가고, 금강산도 갔다. 하지만 고향 땅만큼은 밟아보질 못했다. 황해도 재령 태생인 송해는 어릴 때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했다. 그 인연으로 월남 이후 창극단에서 일하기도 한다.

6·25 전쟁 당시엔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송해는 과거 방송에서 “휴전 전보를 내가 쳤다. 그런데 내가 그걸 치고 고향에 못 가게 됐다. 내가 돌아갈 길을 내가 끊은 셈이다”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와 헤어진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이틀 뒤에 옵니다.” 평소에 별말씀 없으시던 어머니가 그때는 “이번엔 조심해라”라고 했다. 그 뒤에 어머니 얼굴은 보지 못했다. 송해가 2015년 발표한 노래 ‘유랑청춘’은 그 당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눈물 어린 툇마루에/손 흔들던 어머니/길 떠나는 우리 아들 조심하거라/그 소리 아득하니 벌써 70년/보고 싶고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여/재 넘어 길 떠나는 유랑 청춘아/’

연평도에서 미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송해는 바다를 건너며 ‘바다 해(海)’자를 예명으로 썼다. 어린 시절 송복희가 지금의 ‘송해’가 된 것이다. 1955년 유랑극단 ‘창공악극단’으로 가수 활동했다. 또 故 구봉서 故 서영춘 故 배삼룡 故 이순주 등 당대 유명한 재담꾼들과 함께 극장 쇼무대를 누볐다.



송해가 TV 음악 프로그램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그가 일요일마다 출연진에 건넨 “땡”과 “딩동댕”은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일 수 있지만, 스스로를 향한 응어리진 메아리일 수도 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임종도 지키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가수가 되고 싶어한 아들을 극구 반대하며 꿈을 풀어주지 못한 회한, 그토록 바랐던 고향을 결국을 밟지 못하는 현실….

그는 올초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탈락을 뜻하는) 땡과 (합격을 말하는) 딩동댕 중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땡을 받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릅니다.”

좋아하는 술 한잔에 우거지국을 들이키고,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던 그는 이제 영원히 깊은 잠에 취하게 됐다.

'방송계 큰 별' 송해, 95세 별세..추모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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