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가 남기신 말씀
- 임 태 주 시인 -
세수는 남 보라고 씻는다냐 ?
머리 감으면 모자는 털어서 쓰고 싶고 목욕하면 헌 옷 입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겠냐만은
날마다 새 날로 살아라고
아침마다 낯도 씻고 그런거 아니냐..
안 그러면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낮을 왜 만날 씻겠냐 ?
고추 모종은 아카시 핀 뒤에 심어야 되고 배 꽃 필 때 한 번은 추위가 더 있다
뻐꾸기가 처음 울고, 세 장날이 지나야 풋 보리라도 베서 먹을 수 있는데,
처서 지나면 솔나무 밑이 훤하다 안 하더냐
그래서 처서 전에 오는 비는 약비고,
처서 비는 사방 십리에 천석을 까먹는다 안 허냐
나락이 피기 전에 비가 쫌 와야 할텐데....
들깨는 해 뜨기 전에 털어야
꼬타리가 안 부서 져서 일이 수월코,
참깨는 해가 나서 이슬이 말라야
꼬타리가 벌어 져서 잘 털린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든 살펴 봐
감서 해야 한다
까치가 집 짓는 나무는 베는 것 아니다
뭐든지 밉다가 곱다가 허제
밉다고 다 없애면 세상에 뭐가 남겠냐?
낫이나 톱 들었다고 살아 있는 나무를 함부로 찍어 대면
나무가 앙 갚음 하고,
괭이나 삽 들었다 고 막심으로 땅을 찍으대면 땅도 가만히 있지 않는것이다
세상에 쓸데 없는 말은 있어도
쓸데 없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ㅡ 봐라
곧은 건 괭이자루, 휘어진 건 톱자루, 갈라진 건 멍에, 벌어진 건 지게, 약한 건 빗자루, 곧은 건 울타리로 쓴다
나무도 큰 놈이 있고, 작은 놈이 있는 것이나,
야문 놈이나 무른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한가지다
생각해 봐라
다 글로 잘 나가먼 농사는 누가 짓고, 변소는 누가 푸겠냐?
밥 하는 놈 따로 있고, 묵는 놈 따로 있듯이, 말 잘 하는 놈 있고, 힘 잘 쓰는 놈 있고,
헛간 짓는 사람 있고, 큰 집 짓는 사람 다 따로 있고, 돼지 잡는 사람, 장사 지낼 때 앞소리 하는 사람도 다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라도 없어 봐라
그 동네가 잘 되겠냐
내 살아 보니 그닥시리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없더라
허기사 다 지나고 보니까
잘 배우나 못 배우나 별 다른 거 없더라
사람이 살고 지난 자리는,
사람마다 손 쓰고, 마음 내기 나름이지, 많이 배운 것과는 상관이 없는 갑더라
거둬감서 산 사람은 지난 자리도 따뜻하고, 모질게 거둬 들이기만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죽고 없어지도 까시가 돋니라
어쩌든지 서로 싸우지 말고
도와 가면서 살아라 해라
다른 사람 눈에 눈물 빼고 득 본다 싶어도 끝을 맞춰 보면 별 거 없니라
누구나 눈은 앞에 달렸고,
팔 다리는 두개라도, 입은 한 개니까
사람이 욕심내 봐야 거기서 거기더라
갈 때는 두 손 두 발 다 비었고.
말 못하는 나무나 짐승에게 베푸는 것도 우선 보기에는 어리석다 해도 길게 보면 득이라
모든게 제 각각, 베풀면 베푼대로 받고, 해치면 해친 대로 받고 사니라
그러니 사람한테야 굳이 말해서 뭐하겠냐?
내는 이미 이리 살았지만
너희들은 어쩌든지 눈 똑바로 뜨고 단단이 살펴서, 마르고 다져진 땅만 밟고 살거라
개는 더워도 털 없이 못 살고,
뱀이 춥다고 옷 입고는 못 사는 것이다
사람이 한 번 나면, 아아는 두 번 되고 어른은 한 번 된다더니. . .
어른은 되지도 못하고 아아만 또 됐다
인자 느그들 아아들 타던 유모차에도 손을 짚어야 걷는다니
세상에 수월한 일이 어디에 있냐?
하다 보면 손에 익고 또 몸에 익고
그러면 그렇게 용기가 생기는 것이지
다들그렇게 사는 것이지....
* *
옛 노인 말씀 하나도 틀린 말 없네요
임태주 시인의 어머니 유언의 말씀
너무도 가슴 절절한 사연이 마음에 와 닿네요